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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회’와 ‘민비연’ 사건 
‘청사회’ 사건. 박정희 정권의 도덕성이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크게 훼손됐다.

1964년 3·24 학생시위를 계기로 그 존재가 폭로된 청사회(YTP, Young Thought Party :靑思會)는 박정희 군부의 핵심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정되는 학원 사찰 비밀결사였다. 학생들을 학원으로 잠입시켜 정보를 캐내는 그야말로 군부의 정보 조직이었다.

학원사찰 비밀결사대 ‘청사회’ 사건

1960년 혁신계인 사회대중당의 유병묵 후보를 지지하던 40여명의 대학생들이 선거 직후 KKP(구국당)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한 데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생명을 걸고 비밀을 지키며 명령에 복종할 것, 당을 위해 일체를 바친다는 서명을 하고 정당이나 정치단체 혹은 개인에게 이용되거나 어용화되는 경우 자동 해체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5·16 군사쿠데타 직전까지 구국당은 2천여명의 전국 조직망을 확보했다. ‘대한구민계몽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지만 조직의 은폐를 위한 표면상의 이름이었고 실제로는 철저한 극우 노선을 지향, 전투 훈련과 비밀접선 방법 심지어 교살 방법도 학습하게 된다. 4·19 직후 혁명사태를 계획했으나 5·16 쿠데타로 무산되면서 적지않은 타격을 입게된 구국당은 자유당의 재건파인 조경규의 도움으로 혁명위원회의 정보분실 소속 정보당국자와 유대를 맺게 되면서 활로를 찾는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청사회로 새롭게 출발한 이들에게 ‘5·16 혁명의 불가피성’과 ‘군사혁명을 지지해야 할 의의’를 가르치고 상당한 활동비를 지급하면서 대학생들의 움직임, 정부에 대한 반응, 동아리(서클) 활동 등 대학 내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하도록 하는 한편 서클 파괴공작을 펴도록 사주했다. 특정인을 학생회 간부에 출마시키기도 하고 출마를 방해하기도 하면서 학원 사찰을 수행했으며 10·15 선거 당시에는 정치활동에까지 참여해 공화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일명 ‘독수리 작전’에 동원됐다.

학원 내 불신과 불안을 조성하던 청사회는 결국 그 존재가 폭로됐다.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송철원은 청사회 회원으로서 문리대 내에만 30여명의 청사회 회원이 있다는 것, 사이비 학생단체인 ‘한국사회연구회’가 군부로부터 창립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해 모든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중앙정보부가 청사회 소속의 학생들이 데모에 가담하자 송철원을 불러들여 매질을 해댄 데 따른 것이다. 송철원은 제3공화국의 학원 사찰과 중앙정보부의 비밀활동의 내막을 전부 공개해 버렸다.

간첩혐의로 구속, ‘민비연’ 사건

1965년 9월 정부의 요주의 조직으로 낙인찍혀 매번 데모 주동세력으로 몰렸던 ‘민족주의비교연구회’가 ‘서울대 민비연 사건’의 주범으로 불리면서 회원들이 구속된다. 지도교수 황성모와 이미 졸업한 민비연 회원 그리고 재학 중인 회원들은 간첩혐의로 연행 조사를 받아야 했던 것.

군정으로 일시 중단됐던 학생운동 조직이 다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1963년 10월, 서울대 문리대 강당에서는 사회학과 황성모를 지도교수로 하는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일명 ‘민비연’이 발족됐다. 황성모가 지도교수로 추대된 이유는 당시 군부의 핵심 축에 있던 김종필과 가깝다 해서 방패막이의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고 실제로 황 교수는 공화당 조직 참여교수 중 하나였다.

민비연 소속의 이종률(전 청와대 대변인), 총무부장 박범진(전 민주당 국회의원), 연구부장 김경재(현 민주당 국회의원) 그리고 현승일(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중태, 김도현 등은 제3세계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세미나를 여는 등 ‘민족주의’와 ‘반독재’를 결합해 다양한 연구 활동을 벌였다.

민비연 회원인 김중태가 중앙정보부 조사실에서 심문을 받던 중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경상도 사람이 왜 경상도 대통령을 반대하냐?”고 묻자 김중태가 “이북 사람이 김일성이나 지지할 것이지 왜 내려왔냐?”고 되묻다가 김형욱으로부터 봉변을 당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중태는 민비연 사건으로 황성모 교수와 함께 2년의 징역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1967년 12월 16일 민비연 사건은 순수 학술단체로 재판에서 판결을 받아 이로 인해 구속된 황 교수와 김중태, 이종률, 박지동, 박범진 등은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후에 김형욱은 ‘민비연’ 회원을 간첩혐의로 구속한 것은 잘못이었음을 시인했다.  
입력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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