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칼럼/이슈 > 대학50년사

‘한 대학 두 총장’ 사건 
한국 대학사상 처음으로 전원 유급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던 1989년 세종대 ‘한 대학 두 총장 사태’는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대학마다 본격적으로 등장한 학원자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

세종대의 학원자주화 투쟁

89∼90년 세종대 사태의 표면적인 발단도 총장직선제 인정 문제였다. 87년 이후 재단 쪽에서 임명한 세 명의 총장이 모두 재단 논리에만 충실했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었다.

학생들은 처음 도서관 건립과 복지시설 확충, 총학생회 인정 등을 요구하는 수준이었지만 88년 10월,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투쟁을 위해 ‘학원자주화 투쟁 본부’를 설치하고 43일간 철야농성을 벌이며 ‘총장직선제’와 ‘대학발전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교수와 교직원까지 투쟁에 가세하자 결국 재단은 이에 굴복하고 총장직선제 실시 등 16개항의 합의 각서에 서명했다. 이를 근거로 88년 11월 30일 교수협의회에서는 교수 83명 중 찬성 63표로 이종출 교수(국문학)를 초대 직선총장에 선출했다.

그러나 문교부는 세종대 직선총장의 승인 신청을 끝내 거부하고 이 총장이 ‘직무대리’라는 꼬리표를 끝까지 떼지 못하게 해 세종대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어 문교부는 89년 8월 세종대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결과 △대학이 부당하게 교과과정을 개편했고 △규정에도 없는 대학발전위원회를 운영했으며 △대학시설물을 학생복지위원회에 임대했고 △총학생회 기관지 발행 경비를 대학 경비에서 지불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종출 총장직무대리의 해임을 요구했다.

문교부 직선 총장 승인 거부

사건이 확산되자 이종출 총장은 사표를 제출하고 말았고, 재단은 학생들과의 총장직선제 약속을 무시하고 새 총장에 박홍구 교수를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문교부도 세종대 재단으로부터 요청이 들어온 지 하루만인 9월 19일 박홍구 교수를 세종대 총장으로 승인했다.

이처럼 재단이 총장직선제 약속을 정면으로 어기자 교수협의회에서는 기존의 총장직선제를 고수, 89년 10월6일 투표를 통해 참석한 교수 57명 가운데 52명의 찬성으로 오영숙 교수(영문학과)를 새 총장으로 선출하고 재단의 조치에 정면으로 맞섰다. ‘한 대학 두 총장’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이때 재단에서 임명한 박홍구 총장은 대다수 교수, 학생, 직원의 반대에 부닥쳐 학교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고, 오영숙 총장도 학교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결재 등 총장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해인 90년 들어 등록금 납부를 둘러싸고 재단과의 대립이 첨예화됐다. 학생지도부는 오영숙 총장 명의의 ‘민주 창구’를 마련, 학생 7백80여명이 이 계좌에 등록금을 납부했고, 재단과 학교측은 ‘민주 창구’에 납부한 학생 전원을 제적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4월12일 비상학생총회를 열고 합의사항 이행을 걸고 수업거부에 들어갔고, 이에 맞서 박홍구 총장은 경영대 학생회장 등 51명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무더기 고발조치하고, 15일 무기한 임시휴업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대량 유급조치 사태 악화

이처럼 세종대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자 7월16일 문교부는 새로운 세종대 이사진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려 했지만, 새 이사진 또한 농성중인 학생 4천6백여명 중 4천명이 넘는 학생들의 대량 유급조치를 확정하고 유급대상자 명단을 발표해 사태를 더욱 확산시켰다.

결국 세종대 총학생회는 9월26일 전체 총학생회를 열어 1백67일간의 투쟁을 철회했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들에게 남긴 상처는 컸다. 
입력 : 2004.01.15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