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첫 시행되는 대학 자체평가 공개에 대비해 평가지표를 개발·적용해야 하는 대학들의 발걸음이 무겁다.
오는 12월 첫 공개되는 대학정보공시제 준비만도 여력이 없는 마당에 교육 수요자의 눈길을 잡을 수 있는 자체평가 항목과 지표를 만든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개정된 고등교육법에 따라 모든 대학은 자체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법제처 심사가 진행 중인 시행령에 따르면, 신입생 충원율·취업률·교원현황 등 정보공시제에 규정된 13개 항목은 반드시 공개해야 하며, 성과목표 및 달성·특성화 및 구조개혁·국제화 현황 등 대학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지표를 선택해 공개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자체평가 시범대학으로 공주대·동국대·부산대·서울대·아주대·중앙대·전북대·한국외대·인하공업전문대학 등 9곳을 선정, 이들 대학의 모형 연구 결과를 오는 12월까지 제출받아 내년 1월 중 각 대학에 보급할 예정이다.
시범대학 가운데 서울대는 학내 전문가 7명으로 연구진을 구성, 대학 자체평가 모형 개발에 착수했다. 그동안 자연대·공과대·인문대 등이 자체적으로 받은 해외 석학 평가를 기본 자료로 각종 평가와 학내 자료 등을 취합해 분석 중이다.
서울대는 지난 18일 열린 학장회의에서 단과대·대학원별로 1명씩 평가위원을 선정, 평가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단과대·학문별 특성을 반영하고 대학 간 협의를 통해 평가지표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22명 내외로 평가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자체 평가는 크게 △경영·발전전략 △교육 △연구 △사회봉사 △행·재정 등 5개 분야에 걸쳐 진행되며, 평가지표 개발이 마무리되면 내년까지 대학 및 대학원 등 기관평가를 실시한 뒤 2010년부터 학문분야 평가를 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마련한 장기발전계획에서 오는 2025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서울대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양보다는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정보공시제 13개 항목을 평가지표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질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다른 틀로 구성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07학년도부터 ‘상시평가체제’를 구축, 특성화 교육단위를 집중 지원해 온 중앙대는 지난 7월 ‘상시평가규정’을 만들어 학내 전문가 18명으로 상시평가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상시평가관 5명을 위촉했다.
중앙대는 전 학과(부)를 인문·사회·자연·공학·예체능 등 5개 계열별로 △교육목표 △특성화 △교육여건 및 재정 △연구 △취업률 △국제화 등 6개 핵심지표를 평가한다.
올해 평가에서는 6개 지표별 개선도를 점수로 환산해 반영하고, 교수 1인당 특허 출원 실적을 추가했다. 교육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재학생 만족도 지표를 신설, 내년 평가부터 반영키로 하고, 3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대학본부·학과·교수에 대한 만족도를 1·2학기 말에 실시한다. 평가결과 상위 그룹에는 특별예산을 지난해보다 50% 늘린 3억원을 지원하고 교수 특별정원 배정, 공간 우선 배정 등의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고경석 중앙대 평가지원팀장은 “교육목표와 특성화 등 매년 달성도를 측정하기 어렵거나 교수확보율, 장학금 등 학과에서 독자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는 지표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면서 “평가 결과 상위 그룹에 지원하는 비율을 10~15%로 줄여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동국대의 경우 지난해부터 교수·직원·단과대학·행정부서 등을 평가하는 ‘상시평가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학과 평가와 연구소 평가, 업무 평가 등을 연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평가지표는 정보공시 53개 항목 가운데 신입생 충원율·졸업생 취업률·교원확보율 등 22개는 성과평가에 포함시키고 나머지 31개는 업무평가에서 평가하게 된다.
단과대 평가는 대학 전체적으로 관리되는 ‘공통지표’(80%)와 단과대 특성을 반영한 ‘자체지표’(20%), 그리고 향후 공통지표로 전환되는 ‘예고지표’를 가점제로 적용한다. 동국대는 5등급으로 평가해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고 있는데 교수는 최대 1000만원, 직원은 500만원 차이를 뒀으며, 단과대 추가 자율예산 4억원을 책정했다.
경영평가팀장을 맡고 있는 김승용 교수(경영학)는 “직원의 근태율과 업무성과가 다를 수 있듯 계량지표는 한계가 있다”면서 “지표와 목표를 낮게 잡아야 성과가 잘 나오기 때문에 지표 설정과 목표 수준의 적절성을 점검해 이달 중 자체평가 세부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승용 교수는 “우리 대학의 강점을 소비자에게 알릴 수 있는 틀로 자체평가에서 공개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평가하려고 한다”면서 “정보 수요자를 유형별로 분류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을 20~30개는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재학생들이 더 잘 아는 취업률을 단순 수치로 타 대학과 비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만큼 100대 기업 취업률, 제조업·서비스업 등 업종별 취업률 등을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외대도 자체평가 운영위원회를 구성, 평가항목?지표를 개발하고 평가를 실시한 후 성과 관리와 활용 방안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운영위원회는 산하에 지표개발과 성과관리 2개 분과를 두고 분과별로 교육공학·평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각각 10명 안팎의 위원을 둘 예정이다.
지난 2006년 시범 실시 후 지난해부터 단과대별로 MBO(목표관리제)를 실시하고 있는 한국외대는 기존의 MBO를 바탕으로 정보공시 13개 항목을 접목시켜 자체평가의 기본 틀을 마련할 예정이다.
시범대학 외에도 각 대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체평가를 실시하고 있는데, 연세대의 경우 올해 학교발전 계획, 외부평가 등과 연동해 평가지표를 보강했다. 대학·대학원은 매년 자체평가와 서류?방문평가를 실시하고, 자율운영기관과 부설연구소는 매년 서류평가를 실시하되 방문평가는 격년제로 전환했다.
대학·대학원 평가는 △교육·연구(75점) △운영관리(15점) △자체평가보고서(10점) 등을 점검한다. 기초교육 강화(25점), 교수 연구실적 및 산학협력(25점), 국제화(15점) 등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교과목 및 교수방법 개발 실적과 현장실습강좌 참여 학생 비율 등을 평가 순위에 산정했다. 전체 19개 지표 중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 중도 포기율, 학생만족도조사, 동문네트워크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
평가위원도 2년 임기제로 단대별로 2명씩 추천을 받아 20명으로 구성, 이 중에서 매년 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백정미 연세대 선임연구원은 “단순히 순위 발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전략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양희 기자 yanghee@unn.net
내년부터 각 대학이 자체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의무화됨에 따라 평가시스템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사진은 건국대가 지난해 11월 대교협 학문분야별 평가를 받는 장면. <한국대학신문 자료사진>
촉박한 준비 기간·평가 기준 설정 ‘난감’
자체평가 주기 ‘2년 이내’로 수정…10월 최종 확정
일단 10월 시행령 확정까지 관망 자세
자체평가를 앞두고 시범대학을 비롯해 대학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것은 ‘기준 설정’ 문제. 평가지표는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만, 기준 설정에 따라 목표와 달성지표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세계 대학을 기준으로 할지, 국내 우수 대학이 기준인지부터 시작해 계열·전공별로 어느 수준에 맞출 것인지 따져 봐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영진단만 해도 몇 개월에 수억원의 컨설팅 비용이 소요되는 마당에 학교 전체를 단기간에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평가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대학마다 경영진단과 직무분석, 외부기관 컨설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체평가 틀을 운영하고 있지만, 교육기관 전체를 평가해 외부에 공개한다는 것은 기존 시스템에 대한 종합 점검이 이뤄져야 하며, 지표와 목표 설정에 대한 구성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장 내년부터 자체평가 결과를 공개해야 하는 대학들은 시행령이 최종 확정되고, 자체평가 틀이 제시되면 구체적인 작업에 돌입하겠다며 ‘관망’ 자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법제처 심사 중인 시행령은 10월 중에 확정될 예정이다. 김광호 교과부 평가기획과장은 “각 대학이 매년 자체평가를 실시해 공시하는 것은 너무 부담이 크다는 의견에 따라 자체평가 주기를 2년 이내로 수정해 심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다른 대학보다 앞서 연말까지 연구 결과를 내놓아야 할 시범대학의 발길은 더 급하다. 대교협은 시범대학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오는 25, 26일 온양관광호텔 사파이어홀에서 워크숍을 개최한다. 9개 시범대학 담당자와 평가위원, 교과부·대교협 관계자 등 60여명이 참여하는 이번 워크숍은 연세대·성균관대·KAIST·강원대 등 성과지표 우수 대학의 사례를 소개하고, 평가지표 및 기준 개발을 협의할 예정이다.
황인성 대교협 책임연구원은 “대학 스스로 지표와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데, 개별 대학의 장점을 드러내고 특화시킬 수 있는 지표를 중심으로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지표 및 기준을 개발 중이며 시범대학의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들 모형을 참조해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양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