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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좌담회]교육계 원로들의 충고와 제언
"대학은 도덕성 바탕 역사의식 갖춰야"

2009년 대학가에 던지는 교육계 원로들의 목소리는 자성이다. 또한 교육계 원로들은 대학의 자율권 확대와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강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지는 지난 2일 서울클럽에서 조완규·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등 교육계 원로들을 초청해 신년 특별 대담을 갖고 고등교육 현안과 대학 발전 등에 대해 들어봤다.

대학 자율화의 양축은 선발과 재정의 자율

이인원 회장(이하 이인원·왼쪽 사진)
: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연설을 통해 MB정부의 교육철학은 ‘자율’과 ‘창의’라고 했다. 또한 이번 기회에 국가 체질도 바꾸겠다면서 인성교육부터 시작해 교육으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대학 교육의 문제를 말하는데 정말 문제인지, 대안은 있는지 궁금하다.

윤형섭 전 장관(이하 윤형섭) : 대통령께서 대학 자율도 말씀하셨는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학의 자율권 확대는 해묵은 숙제다. 제가 1996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 취임 연설에서 자율권 확대와 사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대학 발전과 운영 차원에서 봤을 때 자율권 확대와 재정지원은 또 다시 강조돼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께서 대학 자율을 말했으면 국고 지원 증대도 포함돼야 마땅하다. 이런 의미에서 손병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이 주장하는 대학재정교부금법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대학 발전을 위한 화두가 됐으면 한다.

이인원 : 대학 자율이 얼마나 제한돼 있다고 보나.

홍일식 전 총장(이하 홍일식) : 대학 자율이라고 하면 첫째가 입시 자율이다. 어떤 학생을, 어떻게 뽑아, 건학이념에 맞게 길러내겠다는 것을 대학에 일임해야 한다. 그런데 천편일률적으로 제도로 묶어 놔서 교과부가 관여하고 있다.

조완규 전 장관(이하 조완규) : 출발이 잘못돼 대학은 정부의 규제 대상이 돼 왔다. 서울대 총장 시절 학칙에 정치활동 금지조항과 학사징계조항을 삭제한 적이 있다. 그러자 바로 정부와 갈등이 생겼다. 결국 당시 문교부 장관이 학칙을 승인해 줬지만 두 달간 정부와 힘겨루기를 했다.

윤형섭 : 대학 자율권은 1970년대 유신 시절, 긴급조치가 나왔을 때 최악이었다. 그때는 학생 징계에도, 교수 해임에도 대학이 자율권을 가지지 못했다. 1990년대에 대학 총장을 지내면서 보니 자율화 면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직 총장, 교직원 입장에서는 아직도 미흡하다.

이인원 : 학생 선발을 왜 대학에 맡기지 못할까 의문이 든다. 1950년대에는 대학에 100% 자율을 줬다.

홍일식 : 제일 중요한 문제가 기여입학제다. 기여입학을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금기시하는 의식 자체가 국민들이나 정부에 있다. 대학이 자기희생을 하지 않고 기여입학제를 한다면 현실적으로 지지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지금 수험료는 합격할 때까지 계산하면 30만·40만원 되지 않나. 입학원서 원가는 매우 저렴하다. 입학원서대를 가지고 대학이 이해득실, 눈앞의 이익에 얽매여 있는 한 국민 정서만 탓할 수는 없다. 국민이 이해 못한다고 원망할 게 아니라 대학이 도덕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

조완규 : 기여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여금을 받아 장학금을 주고 학교 시설에 투자한다면 명분이 있지 않겠나. 또 돈으로 입학한다는 것은 졸업장을 돈으로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당연히 거부감을 갖는다. 학사징계를 엄하게 해서 기여입학을 해도 졸업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도 있다.

윤형섭 : 기여입학제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학집단 자체다. 200개 대학이 있다고 하면 부익부 빈익빈 논리가 나와 지방 군소대학들이 위기의식을 느껴 반대하니까 대교협에서 기여입학제를 함부로 내놓지 못한다. 대학 사회 안에서도 이해득실에 따라 대립이 심하다.

대학, 도덕적 정당성 위에 서야

이인원
: 대학 자율화는 선발의 자율과 재정의 자율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데 대학 교육의 화두 중 하나는 경쟁력이다.

홍일식 : 그 말씀 들으니 과거 일화가 생각난다. 어떤 분이 전경련 회장 시절에 ‘기업에서는  불량제품이 생기면 리콜이나 AS를 하는데 대학은 불량 인재를 양산해 놓고 리콜은커녕 AS도 안 한다’, ‘기업에서 적어도 1년 이상 재교육시켜야 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 적 있다. 그때 제가 ‘기업의 CEO들은 실제 업무에 투입해 써먹을 기술은 우리가 가르칠 테니 대학에서는 바른 인성을 가르쳐 달라 이렇게 말씀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대학 경쟁력도 이런 면에서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윤형섭 : 신속하게 변하는 국제사회에 맞춰 국가도 변화해야 한다. 그 변화를 선도하는 것은 인성·기술·국제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고 인적자원의 공급처가 대학이다. 대학 경쟁력은 바로 이를 뒷받침하고 선도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구체적인 계수로 대학 경쟁력을 측정하는 기관들이 생겨 전 세계 대학을 일렬종대로 세우고 있다. 그런데 평가 항목들을 연결시켜 보면 변화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느냐, 가르치고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대학 경쟁력은 대학 간 경쟁이 아니고 사회에 대해 대학이 생존·산출하는 능력으로 봐야 한다.

조완규 : 상하이자오퉁대 평가를 보면 한국 대학은 ‘100등 내에 하나, 200등 내에 둘’ 이런 식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들이 건물 짓는 걸 보면 엄청나다. 만일 건물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한국의 몇 개 대학은 1·2·3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캠브리지대나 옥스퍼드대가 건물로 이름값 하는 것은 아니다. 건물 짓는 비용으로 학생들 공부시키고 교수들 연구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결국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이인원 : 지금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대학 구조조정 문제가 화두다. 구조조정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보나.

조완규 : 제가 장관을 지내던 때는 대학이 105개 정도였다. 김영삼 정부 때 되니까 200개 정도로 늘었다. 대학 수는 많이 줄여야 된다. 자체 존립하기 어려운 대학들이 자꾸 생길 것이다. 통합을 한다고 해도 상대가 있어야 되는데 상대가 맞상대로 통합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홍일식 : 총장 재임 시절 ‘바른 교육, 큰 사람 만들기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대학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는 돈(기부금)이 들어오지 않고 통폐합이 불가피한 시대가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구조조정도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구조적으로 되게 돼 있다. 대학은 도덕적 정당성 위에 서서 논리적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

윤형섭 : 홍 총장님 말씀에 동의한다. 대학 존폐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도덕성이다.

2009년, 대학 자성의 해로 삼아야

이인원
: 지금까지 대학과 고등교육 발전을 위한 조언들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 대학의 변화를 위해 꼭 실현됐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린다.

조완규 : 대학이 인력양성을 하는 것은 당장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10·20년을 보고 해야 한다. 현재 경제 성장의 주역은 30·40년 전에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형식·방법·철학을 볼 때 과연 20·30년 후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제가 볼 때는 비관적이다. 올해 대학들이 이 같은 점을 감안해 교육의 방향을 잡았으면 한다.

윤형섭 : 우리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뒤집으면 결국 대안이 된다. 다만 대학 자율화와 관련해 중요한 몇 가지를 추가한다면 먼저 우리는 대학 자율권만 얘기했는데 초·중등 교육에 대한 대학의 책임이 필요하다.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줘도 대학이 자율권에 대한 자기제어능력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대학이 입시정책을 어떻게 자율화하느냐에 따라 초·중등 교육을 살릴 수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사학법은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학법에는 정치적 의도가 포함돼 있다고 본다. 그래서 많은 사립학교들이 못 받아들이는 것이다. 교육에 정치논리가 침투해 들어오면 교육현장이 망가진다.

홍일식 : 대학은 최고의 지성이 모인 곳이다. 대학이야말로 국가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국가철학·역사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대학의 본질을 망각한 사람들이 대학을 운영한다고 하니 점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대학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자성하고 새 출발하는, 위상을 재정립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사회 : 이인원 본지 회장, 정리 : 정성민 기자 bestjsm@unn.net,  사진 :  한명섭 기자 prohanga@hanmai.net>

정성민 기자 (bestjsm@unn.net) | 입력 : 09-01-05 오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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