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지금까지 중요 교육 정책이 정치적 논리에 좌우되는가 하면 교육 수장의 기본 철학이나 파벌에 얽힌 관료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되거나 윤색돼 왔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개혁에 앞서 교육부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본지는 참여정부 2기를 대표하는 김진표 교육부총리 취임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고 있는 교육부의 실상과 경쟁력을 집중 조명하는 연중기획 ‘진단, 교육인적자원부’ 시리즈를 마련한다. 총 3부에 걸쳐 진행될 이번 기획은 대학 정책을 둘러싼 관료 사회와 교육 시스템, 정책 공과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교육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자는데 있다. <관련 기사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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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교육부장관 표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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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정부 수립부터 2005년 현재까지 교육부 조직의 최정점에 서온 교육부장관의 표준 모델은 어떤 모습일까?
“영남 지역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한 경력을 가진 50대 후반의 남성”
이는 본지가 연중 기획 ‘진단, 교육인적자원부’ 시리즈 게재에 앞서 지난 57년간 교육부를 거쳐 간 장관 48명(중임 2명 포함)의 프로필을 분석한 결과다.
◆ 영남 출신 인사 두각
역대 교육부장관 48명 중에는 영남 출신이 14명(29.2%)으로 가장 많았다. 초대 안호상 장관은 경남 의령, 12대 박일경은 경북 경주 출신이었으며 16·18대를 맡았던 권오병과 17대 문홍주는 경남 창원으로 동향이었다. 이밖에도 35대 박영식, 42대 이돈희, 2대 교육부총리 이상주, 3대 교육부총리 윤덕홍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이북 출신 인사도 11명(22.9%)이 기용돼 눈에 띄었다. 2대 백낙준 장관은 평북 정주, 4대 이선근·5대 최규남 장관은 개성, 8대 오천석 장관도 평남 강서 출신이었다. 이북 출신 인사들의 기용은 주로 정부수립 직후 두드러졌으나 19대 홍종철, 20대 민관식, 24대 김옥길, 30대 정원식, 40대 문용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서울·경기 출신도 8명으로 세번째로 많았다. 36대 교육부 장관, 4대 교육부총리를 역임한 안병영, 5일 천하로 막을 내린 5대 부총리 이기준은 서울, 6대 부총리 김진표는 수원 출신이다.
◆ 서울대 출신 미국 박사, 친미 엘리트 근원
학부는 국내, 특히 서울대 출신들이 월등히 많았고 박사 과정은 미국에서 밟은 경우가 많았다.
학부 출신 대학별로 살펴보면 서울대 출신이 23명.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은 67.6%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문희석(10대), 박일경(12대), 윤천주(15대), 문홍주(17대), 유기춘(21대), 이돈희(42대), 한완상(1대 부총리), 이상주(2대 부총리), 윤덕홍(3대 부총리) 장관 등이 모두 서울대 동문으로 우리 교육계의 고질병인 ‘명문대병’, ‘학벌주의’ 문제가 하루 이틀의 노력으로 해결되기 쉽지 않은 문제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연세대 7명, 고려대·이화여대가 각 2명으로 뒤를 이었고 일본(8명), 미국(3명)에서 대학을 나온 경우도 있었다. 해외 대학 학부 출신 장관들은 대개 초기에 집중돼 있는데, 이는 오랜기간 동안 일제강점기에 놓여 있어 고등교육을 받기가 수월치 않았던 국내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박사학위 취득자는 34명, 66.7%인 것으로 나타나 교육부 장관들의 ‘고학력’을 자랑했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16명이 미국 학위 소지자였으며, 또 이 가운데 절반 이상(9명)은 서울대 학사-미국 박사의 코스를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 대학 총장, 교수 출신 인사들 압도
장관 대부분이 대학 교수 및 총장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전체 48명 중 5명을 제외한 43명은 모두 대학 교수 출신이었다.
교수 경험이 없었던 5명은 10대 문희석, 19대 홍종철, 20대 민관식, 38대 이해찬, 6대 부총리 김진표 등. 문 장관은 5·16 쿠데타 직후 시작된 군정 첫 문교 수장으로 해병대 작전국장 출신이었다. 홍 장관 역시 5·16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육사 8기 출신. 하지만 홍 장관은 장관에 기용되기 2~3년 전에 17대 문교부차관으로 교육관료 경험을 쌓기도 했다.
20대 민관식, 38대 이해찬은 정치인 출신이었다. 민 장관은 4선 의원으로, 대한체육회장을 지냈고 이 장관은 3선 의원으로 국민회의 당무위원회 부의장을 지냈다.
교수와 관료경험을 모두 갖고 있었던 장관들도 13명으로 적지 않았다. 6대 최재유는 보건사회부장관과 이화여대 부총장을 지냈고 12대 박일경 장관은 서울대·부산대에서 강단에 섰다가 법제처장에 기용된 바 있으며, 오랜 기간 검사생활을 해 온 권오병 장관은 법조계 활동 중 3년 동안 경희대 법대 교수로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 22대 황산덕 장관은 법무부 장관을, 25대 이규호 장관은 통일원 장관을 지내다 교육부로 자리를 옮겼고 1대 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도 통일부총리를, 김진표 현 부총리도 경제부총리를 지낸 바 있다.
◆ 최연소 40세 문희석(10대), 최고령 69세 서명원(28대)
역대 장관들이 장관직에 기용됐을 당시 연령을 분석해 본 결과 평균 57세였다. 연령대별 분포를 보면 60대가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도 19명으로 비슷한 규모였다. 40대 장관들도 9명이나 나와 눈에 띄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장관들의 연령은 다소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연소 장관은 5·16 직후 문교부를 접수한 문희석 장관. 그는 40세 불혹의 나이였다. 뒤를 이은 11대 김상협, 12대 박일경 장관도 43세로 40대 초반에 장관직을 맡았다. 그러나 19대 홍종철을 끝으로 김진표 현 부총리까지 29명 중 40대 장관은 국민의 정부 시절 ‘실세장관’으로 불렸던 38대 이해찬이 유일했다.
최고령 장관은 6공화국 첫 문교부 장관을 맡았던 28대 서명원 장관. 서 장관은 1919년생으로 당시 69세였다. 그 뒤는 교육시민단체의 반발 등으로 최단명 장관의 기록을 세운 이기준 5대 부총리가 이었다. 이 부총리는 1938년생 68세였다.
◆ 여성 장관은 단 두 명 뿐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았다. 비율로 따지면 96%. 여성 장관은 24대 김옥길, 34대 김숙희 장관 단 두명 뿐이었으나, 이들은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