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규제가 대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미의 자조 섞인 우스개가 대학가를 떠돌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해 말 ‘대학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 오는 2007년까지 총 63건에 대해 규제를 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대학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교육부에게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을 정도다.
대학 자율화 추진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대학의 주·야간 전과가 허용된다. 학교법인의 기본재산 처분 시 이를 신고해야 하던 ‘신고제’가 폐지되고 허가요건도 완화된다. 내년에는 대학별로 정시모집 일정을 자율 조정할 수 있게 되며 정시모집 기간 중 추가모집 홍보도 허용된다. 2007에는 교수업적평가기준과 방법·절차도 자율화된다.
그러나 법령상 규제 관련 조항을 폐지·완화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 관련 정부 정책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대학의 책임을 강조하는 ‘국민정서’가 큰 규제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대학에 관한 것은 통제만 있지 지원은 없다. 동시에 교육은 성역이라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 일절 이의제기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염재호 고려대 전 기획예산처장)
“대학에 대한 규제는 교육부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총체적 방향과 원칙은 지켜가되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원칙 하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집단에게는 자율을, 아닌 집단에게는 규제를 가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강호상 서강대 기획처장)
“대학의 자율성이 굉장히 한정돼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 대학의 기본적인 틀 자체가 교육을 ‘육영사업’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틀이 바뀌지 않는 이상 웬만한 것은 모두 제약이 된다.” (장익환 인하대 기획처장)
이것이 바로 정부의 각종 대학 정책 수립 및 추진 시 카운터파트너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 기획처장들이 체감하는 규제의 수준. 국제 경쟁을 준비해야 할 대학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좁게는 ‘정원감축에 치중한 구조개혁’, ‘협조공분 형태의 행정지도’ 등의 규제사례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장익환 인하대 기획처장은 “구조개혁 관련 정원감축은 부담이 큰 문제이기 때문에 천천히 생각해 결정해야 하지만 압박감이 대단하다”며 “모든 지원사업이 구조개혁과 연계, 정원감축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특성화가 어렵다”고 꼬집고 “평가도 지표·숫자 위주로 진행돼 대학이 나가야 할 방향이 왜곡된다는 느낌”이라고 비난했다.
염재호 고려대 전 기획예산처장은 “법적 규제는 없다 하더라도 ‘협조공문’ 형태의 행정지도는 여전하다”며 “학기 초 등록금 관련 지침의 경우 협조공문 내용대로 따르지 않으면 행재정 지원을 가하기도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대학을 둘러싼 각종 규제에 대해 강호상 서강대 기획처장은 “사회 형평성을 강조하는 중국에서조차 칭화대는 외국대학과 거의 같은 시스템을 허용하는 등 우리보다 훨씬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기본방침은 살려두되 잘 할 수 있는 곳에 대해서는 견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금융산업의 경우 IMF를 겪는 과정에서 규제를 풀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며 대학에도 규제를 풀고 자율경쟁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뒤떨어지는 분야가 정부와 대학이다. 규제하지만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강 처장의 일침이다.
염재호 전 처장은 21세기 지식사회에 걸맞는 지식개발을 위해 대학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정서대로 대학이 사회적 공기라면 합당한 정부지원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동시에 경쟁을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강점은 다양한 형태의 경쟁에서 자정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라며 “통제시스템일수록 문제는 더 많다”고 말했다.
염 전 처장은 또 자율화 결과에 대한 평가는 시장에 맡길 것을 당부했다. 그는 “잘못이 있으면 확실하게 시장에 공개해 알리고 시장이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며 “민감한 교육시장에서 문제가 한번 불거지면 학생들이 더 잘 알고, 해당 대학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 정서가 대학의 자율화와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되기에 이르기까지는 대학의 책임도 크다. 실제로 염 전 처장은 교육단체와 대입 3불정책 관련 토론회에 참가했다가 ‘대학은 다 썩은 것 아니냐’는 식의 비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국제경쟁의 시대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런저런 규제에 묶여 지체할 수 없다는 대학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정도에서 벗어나는 대학은 스스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