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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 본지 주필 VS 니시오카 겐지 교수 대담
윤동주 추모모임 이끈 주역들
생애와 작품 이해...역사적 생채기 치유에 도움 기대
50주기 이후 한국선 아무도 참석 안해
윤동주 서거 57주년을 맞아 지난달 16일 후쿠오카에서 문학평론가 겸 본지 주필인 김우종 전 덕성여대 교수가 지난 94년 후쿠오카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을 발족시켜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는 니시오카 겐지 교수를 만났다.

김 주필과 니시오카 교수는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의 그동안의 활동을 회고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대담을 마치며 두 교수는 시인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시인이 처했던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한일 양국의 역사적 생채기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우종 주필 : 지금 이 자리가 시인 윤동주가 해방 직전에 옥사한 옛 후쿠오카 형무소이다. 오늘이 바로 57주기가 되는 2월16일인데,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주최하는 추모행사로는 몇 번째가 되는건가?

니시오카 교수: 우리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은 한국대학신문이 주최했던 지난 95년 50주기 행사에 참가한 후 매년 추모식을 열었다.. 이번 행사는 여덟 번 째다.

김우종 : 50주기 이후 한국에서는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행사와 모임을 지속해온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모임에는 대개 어떤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나?

니시오카 : 회원들이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시인, 교수, 언론인, 회사원, 가정주부 등 다양하다. 오늘은 약 30명 정도가 참가했다.

김우종 : 윤동주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각각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 고인에 대한 제사는 유가족이나 그 친지들이 주관하는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윤동주 같은 국민적 시인은 한국인이 유족의 입장에서 제(祭)를 지내야 한다. 오늘의 추모식도 일종의 제사인 만큼 한국인이 해야함이 원칙인데 제주(祭主)가 바뀐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자서라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참가하려고 찾아왔다.

다만,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바로 잡고 윤동주가 바라던 진정한 평화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일본인에 의한 이런 행사야말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은 언제부터 윤동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

니시오카 : 윤동주를 알게 된 것은 지난 73년 우지고(宇治鄕) 씨가 계간 「마당」에 '저항시인 윤동주'라는 글을 기고했을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29년전인 당시, 나는 이 잡지사의 편집국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제목이 '저항시인'으로 돼 있듯, 윤동주의 시 자체에 대해서는 몰랐고 그저 대단한 저항시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김우종 : 그렇다면 당시 선생은 한국에 있었다는 건가?

니시오카 : 당시 나는 한국에 건너와 연세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김동욱, 설성경 교수를 따라 춘향전을 연구했다. 그후 세종대 일문과에서 10년 동안 재직하며 부교수까지 했다. 주로 일어회화, 문학사, 고전문학을 강의하고 대학원에서는 근대문학특강을 맡았다. 때문에 한국에 제자가 5백명이나 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에서의 춘향전 수용사 연구'라는 논문을 쓰고 있다.

김우종 :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은 언제 어떤 동기에서 만들었나?

니시오카 : 지난 94년 12월에 발족했다. 김 주필과 함께 형무소를 답사한 직후가 되겠다. 모임을 만들게된 동기라고 한다면, 멀리 바다 건너 한국에서 온 한국인들이 후쿠오카에서 옥사한 윤동주의 50주기 위령제를 현지 사람들의 도움 없이 치른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스스로가 진작 위령제를 지냈어야 할텐데 지금까지 안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일본을 느꼈다.

그래서 위령제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혼자서라도 참여하는 마음으로 일본 언론을 통해 호소했다. 그때 함께 하기로 했던 교수 한 분 중에 윤일주 교수(윤동주 동생)의 지인이 있었다. 주로 그 교수의 인맥을 통해 사람을 모았다.

김우종 : 윤동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민적 시인이다. 이처럼 그가 우리 문학사에서 귀중한 자리를 잡은 이유는 시 속에 담아낸 그의 고귀한 정신 때문만이 아니다. 학생 시절에 그 길을 가기 위해 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늦기는 했지만 50주기가 되던 날, 한국대학신문이 추모 위령제를 열기로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저 높은 담을 바라보다가 울컥 억울함과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는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그는 여기서 죽기 위해 북간도에서 이 이국땅까지 그렇게도 고달픈 먼 길을 돌아 왔구나 하는 생각에…. 그런데 막상 위령제를 기획하다보니 어려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당시 일본 현지에서 선생의 활동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니시오카 : 모모찌니시 공원 사용허가와 도로행진 허가를 얻어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해들은 무용가 등 예술가들이 춤과 음악을 윤동주의 영정앞에 바치겠다고 나서 큰 힘이 됐다.

오히려 힘들었던 것은 위령제를 마치고 난 후였다. 한국인에 대한 냉랭한 일본인의 의식을 풀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두르지 않되 쉬지 않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침 윤동주 시집이 일역(日譯)되고 있었다. 우리 모임은 윤동주와 인연을 맺어 생긴 모임이니, 이 시집에 있는 시를 늘 두어편씩 읽어 나가기로 했다. 시인의 맑은 영혼을 알게 되면 될수록 그 시인을 죽게 한 사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시인의 영혼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반성을 통해 '원인과 반성'이라는 지평을 넘어 밝은 단계로 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까지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모임을 만든 후 1년 동안 참으로 고생했다. 1년도 안되고 모임이 없어졌다면 너무도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한편으로는 이 모임이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시를 공부하는 모임'에 사람들이 모일까 하는 걱정과, '한국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과정을 극복해 나가는 데는 유학생들의 도움이 컸다. 회원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주었다.

김우종 : 특히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니시오카 : 시를 심도 있게 읽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 나름대로의 답을 얻으려면 온 힘을 다 써서 시와 격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감동이 있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우종 : 일반 회원들은 모두 번역작품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런 점은 어렵지 않았나?

니시오카 : 그렇다. 주로 내가 원작과의 차이점을 설명해주곤 했다. 번역시의 한계를 느낀 사람은 결국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한다.

김우종 : 모임의 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꼈다면 어떤 때였는가?

니시오카 : 한국인, 그리고 재일 한국인한테서 고맙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다. 물론, 일본인들에게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됐겠지만 말이다. 사실 내 전공이 현대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고, 갈등을 겪을 때도 있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모임만을 지속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김우종 : 앞으로의 계획을 밝혀달라.

니시오카 : 회원들의 연구 결과, 토론 결과를 묶어낸 토론집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윤동주와 어떻게 대화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한다.

김우종 : 과거 한일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니시오카 : 잘 모르겠다. 다만 모임을 시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윤동주의 시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그의 정신을 알게될수록, 이런 사람을 여기서 죽게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그게 바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겠는가?

김우종 : 시를 읽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시 속에서 시인과 독자가 하나가 됨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게 시 속의 만남을 통해 하나가 되면 그가 여기서 죽은 사실에 대해서 누구라도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게 될 것이다. 왜 죽었는지, 왜 그런 일이 있어야만 했는지,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또는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 무엇이었는지 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말이다. 니시오카 선생과 회원들이 여기서 그 역사적 상처에 대한 해답을 얻기를 기대하고 싶다.

윤동주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인류의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다. 전쟁이 없고 가해자가 없고 누구나 고귀한 생명과 재산과 인격을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일본에서 소중한 역할을 해 주시리라 믿는다.

<정리=김은영 기자>

김은영 기자 (news@unn.net) | 입력 : 02-03-02 오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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