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유명한 좌파출신 지식인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고별강의를 한 것.
공개 강의로 진행된 '신영복 함께 읽기' 강의에는 수강생 외에도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대표 등 지인들과 일반인, 기자 등 3백여명이 참석해 장사진을 이뤘다.
박경태 교수(사회학) 등 성공회대 후배 교수들도 대거 참석했다. '선배'이자 '스승'이었던 신 교수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교수들은 귀를 종긋 세웠다. 이날 수업이 잡혀있던 일부 교수들은 자신의 강의 수강생들까지 대동하고 노(老) 교수의 고별강의를 들었다. 김서중 교수(신문방송)는 "퇴임강의를 공개하게 된 데는 '정년퇴임 이전에 학생들에게 신 교수의 강의를 듣게하면 어떻겠느냐'는 동료교수들의 제안으로 성사됐다"고 말했다.
#. 1교시 '죽순의 시작'
노 교수의 마지막 강의의 문은 17년 전 그의 '첫 강의' 현장을 지켰던 제자 송경룡 신부가 열었다. 첫 강의 제자의 뒤를 이어 '감방동기'가 차례로 '교재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노 교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대나무는 마디가 짧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마디가 30미터가 되는 대나무의 큰 키를 지탱하는 힘이 되죠. 죽순의 시작이라는 것은 바로 짧은 마디를 만드는 것입니다."
신 교수는 88년 출소 직후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글 '죽순의 시작'을 소개하며 대나무의 특성에 인간사를 빗대 설명했다. 대나무가 긴 줄기만큼이나 긴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뿌리를 공유해 항상 숲을 이룬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강의실을 가득메운 학생들에게 "죽순의 시작은 튼튼한 뿌리에 있다"며 "우리 사회의 선도적 역량을 준비해야만 큰 키의 대나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신 교수는 "사회가 디지털화되고 속도를 요구하면서 뿌리보다는 잎사귀를 바라보는 경향이 팽배하다"며 "우리 사회의 뿌리는 반드시 일궈야 할 우리의'저력'"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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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과불식(碩果不食 :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 10분 휴식 뒤 이어진 2교시에서 신 교수는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법을 강의했다.
'석과불식'는 '주역'의 64괘 중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는 박괘(剝卦)에 나오는 말로, '석과'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남은 과실을 뜻한다. 남은 이 한 개 마저 언제 떨어져 없어질 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지만 옛 사람들은 오히려 여기서 '씨과실은 결코 먹히지 않는 법'이라는 희망을 찾아냈다는 것. 그래서 절망의 괘를 희망으로 바꿔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야기된 지금의 위기상황이 석과를 연상시킨다"며 "하지만 마지막 과실의 씨가 이듬해 봄에 새싹이 되어 땅을 밟고 일어서듯 진정한 희망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사람을 아름답게 길러낼 수 있는 숲을 만들어야한다"며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과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엘리트 생산 구조는 왜곡돼 있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대학은 물론 정부 유관기관이 원정출산 등으로 훈련된 인력으로 다 차버리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사람'이라는 단어를 약분하면 '삶'이 됩니다. 삶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대부분이죠. 그것이 갖는 최고의 의미는 사람의 가치를 온전하게 읽어내고 키우는 것이라고 봐요. 대학, 학교, 사람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칫 수단화되고 물질적 가치의 하위에 배치돼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학이, 학교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숲으로 자리잡기를 기원합니다."
17년 교직 생활을 마감하는 장기수 출신의 노 교수. 강단을 떠나지만 대학과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