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던 분야에 ‘최초’로 진출해 지금은 요소마다 이화여대 출신 인재들이 포진해 있다. 정치, 의학, 법조, 신학계 등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닫혀있던 장막을 제치고 한국을 이끈 여성파워를 소개한다.
이화여대는 1900년 한국 최초의 여의사를 배출했다. 1886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박에스더 씨였다. 한국여성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하란사 씨도 이화여대 졸업생이었다. 이화학당 입학 당시 기혼자였던 하란사 씨는 이화여대가 기혼자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자 당시 교사로 있던 프라이 당장을 찾아가 결국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1918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7년간 이화여대 총장을 맡았던 김활란 씨은 한국여성 최초의 박사학위 취득자(1931)이자 한국 최초의 종합대학 총장(1946)이었다.
이밖에도 ‘학교종이 땡땡땡’의 작곡가로 유명한 김메리 씨는 한국 최초의 여류작곡가였으며, 1933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임길재 씨는 뉴욕 최초의 동양인 개업의, 1936년 졸업생인 이태영 씨은 여성의 몸으로 1952년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됐다.
1955년 졸업생인 윤후정 전 총장은 초대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1964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장명수 씨는 국내 최초로 신문사(한국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일본은 없다’로 유명한 전여옥 씨도 이화여대 졸업생이다. 전씨는 국내 언론 최초의 여성 해외 상주 특파원이었다.
이밖에도 한국인 최초로 미 국립보건원(NIH) 임상연구부 분자 미생물 연구질장을 지낸 권경주 씨(1958), 초대 여성부 장관인 한명숙 씨(1967), 한국인 최초로 카네기 홀에서 독창회를 가졌던 김자경 씨(1940), 비뇨기과 전문 여의사 1호인 윤하나 씨(1994) 등도 이화여대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