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또 이런 의미에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염상진 과 그 밖의 몇몇 빨치산들의 최후의 모습도 그렇다. 끝까지 자기 신념을 위해서 싸우다가 마지막에 수류탄을 터뜨리며 함게 자폭해 버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하고 멋진 장면이다.
이같은 죽음은 물론 누구나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지 만 특히 지식인에게 있어서 이런 죽음은 가장 매력적인 것이 다. 왜냐면 그들은 많은 지식을 통해서 누구보다 확고한 신념 을 쌓아나가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그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6·25 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이런 지식인을 가장많이 낳은 시기가 된다. 특히 북쪽 편에 섰던 지식인들이 그렇다.
해방 후에 대한민국 편에 선 지식인들은 특별히 그 체제 신봉 자가 되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서적을 찾아다니며 공부하지는 않았으나 코뮤니스트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는 항상 팸플 릿이 있었고 토론회가 있었으며 전쟁 중에도 그들은 학습을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탄이 꽝꽝 떨어지는 순간 에도 야간이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치상학'의 공부 시 간을 가졌다. 미군이 뿌린 삐라를 표백해서 노트를 만들고 미 군의 기관포탄으로 등잔을 만들어 가며 어둠침침한 벙커 안에 서 그들은 확고한 사상적 신념을 쌓기 위한 지식인의 자부심 을 길러 나갔다. 그래서 일자 무식이었던 병사들까지도 입대 후에는 지식인이 되었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일방적 사상교육만 받은 병사들은 그렇다 치더 라도 원래 지식인으로서 사상가임을 자부하며 목숨까지 바쳤 던 사람들의 그 죽음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지식인의 순교일까?
이것은 꼭 이 땅의 인텔리 코뮤니스트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정치적 권력은 다수의 민중적 지지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며 그들을 동원하는 최고의 수단은 그들을 사상적 신봉자로 만들 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쪽이나 거의 예외가 아니다. 도구에 불과했던 지식인.
그런 의미에서 해방 후의 역사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가장 많 이 바보로 농락 당한 시대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본지주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