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뒤바꿀만한 커다란 화두 하나가 등장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학벌주의병폐 논란의 정점에 있는 이른바 ‘서울대개혁론’이다.
서울대를 둘러싼 말들이 이처럼 범람했던 적은 해방 이래 없었다. ‘서울대를 폐지하라’, ‘분할하라’ ‘민영화하라’ ‘국공립대 통폐합하라’ ‘공교육기관답게 이공인문기초분야만 책임져라’ 등등. 서울대 개혁을 둘러싼 담론들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침체나 청년실업 등 국내외로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가 이 시점에서 굳이 ‘서울대개혁론’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단지 민주노동당이 서울대폐지론을 핵심정책으로 내걸고 나왔다거나 서울대 사수를 위한 서울대출신들의 조직적 결집현상이 심상치 않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또 서울대가 해마다 교육예산과 연구특별지원비라는 명목으로 국민세금 2조원을 들인 ‘돈으로 만든 명문대’이기 때문도 아닐 것이다.
개혁론을 주목해야 하는 시대적 대의는 국민 절대다수가 체감하는 상대적 열패감이 지나치게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한국판 카스트제 즉 지독한 학벌계급시대가 형성된 탓이다. 문벌타파, 족벌타파가 등장했던 지난 역사적 순환법칙에 비추어 볼 때 무한팽창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서울대를 놓고 학벌타파론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시대적 요청일 수도 있다.
또 서울대 개혁론의 뒤에는 학벌 때문에 취업 문턱에서 수없이 좌절을 겪어야 하는 지방대생들의 설움과 소위 비주류대학 학생들의 애환이 놓여 있다. 사회에 나와서도 기업과 관료조직 내에서 학벌 패거리 문화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사회인들의 박탈감도 짙게 배어있다.
그렇다면 서울대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어떠한 존재일까. 서울대를 향한 개혁의 목소리는 열등한 자들의 질투어린 마녀사냥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이 나라의 교육 천년지대계를 걱정하는 염려의 목소리일까.
서울대개혁의 구체적 대체담론들
서울대 사수론자들 조차 서울대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떤 식 어떤 규모로든 서울대는 개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세인 듯 하다. 그렇다면 서울대 개혁론의 구체적인 모습과 대체 담론들은 어떤 내용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서울대를 둘러싼 개혁론의 종류는 크게 폐지론, 분할론, 민영화론, 다이어트론(축소론), 국공립통폐합론 그리고 이들을 조합한 절충론 등이다.
먼저 폐지론은 “서울대는 이미 권력화와 파벌형성이 심각한 상태고 입시병폐를 만드는 주범이기 때문에 그 사회적 거악과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폐지론자들은 또 “서울대에 들어가고 있는 특혜자원을 적절히 성과급 자원으로 돌리고 지방 국공립대나 사립대 가운데 탁월한 연구성과를 올리는 우수대학에 안배”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조건부 폐지론자는 “독점파벌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서울대 학부선발을 중단하자”는 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분할론과 축소론은 10여개 학교를 통폐합해 만든 서울대를 이번엔 특성별로 분할하거나 일부 인기성 단과대학은 폐지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대 의대 연건캠퍼스가 아니라 국립의학대(가칭)로 별도 법인화하는 등 특성별로 분할시킨다면 종합대로서의 서울대 파벌 병폐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대는 인문학이나 기초이공과학 학문들을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으므로 이 분야 단대들만 남겨두되, 법학 등 인기성 전문학과들은 자유시장경제질서 원리에 입각해 사립대 시장영역 등에 맡기자는 제안도 나온다. 또 인원 대폭감축을 통해 서울대 무한팽창주의를 수정하고 소수정예인재 선발 및 육성시스템으로 가야하며, 연구중심의 대학원 체제로 가자고도 제안한다.
서울대 축소론 가운데 솔깃한 것은 서울대가 개혁돼 정상적인 공교육기관으로 복귀하게 되면 이후 명문사립대 등과 함께 5~6개 대학들이 주도하는 다점경쟁체제가 만들어 질 것이라는 점이다. 견고한 피라미드형 서울대 독점체제를 타파한 후의 다수대학이 주도하는 형태인 다점경쟁체제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어느 대학이라도 부단히 노력하면 명문 반열에 올라 다점체제의 주역이 되는 유연성과 유동성이 살아있는 교육시장형태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다만 다점경쟁체제는 반드시 교육 수준이 상향평준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민영화론은 서울대가 진정한 명문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돈으로 만들어진 명문에 대한 회의가 짙게 배어있다. 진정한 명문이란 능동적인 노력과 창의역량에 따른 성과지표, 전통과 학풍, 학내민주화와 온오프라인의 물적 기반 등이 종합적으로 축적돼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대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견줄 만한 대학 하나를 만들자는 논리 때문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 ‘게으른 하마’를 유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민간자본가에게 적절한 절차를 거쳐 매각 민영화시키면 본래의 자유시장경제질서에 입각해 관료적 안일주의가 사라지고 서울대 스스로 체질개선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공립통폐합론은 민노당이 주장하고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이는 전국 국공립대를 공동법인화하거나 통폐합해 특정 대학 교수나 교직원들의 특권의식을 제거하는 등 상호 인적, 학술적 교류를 유동화시키자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서울대나 부산대 등 대학간판이 사라지며 프랑스식으로 제1, 제2, 제3국립대 방식을 따르게 될 수도 있다. 또 이를테면 경북대 졸업생과 서울대 졸업생들 모두 동일학위를 수여받기 때문에 우열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우열을 원하는 이들은 명문사립대학으로 진학하면 되고, 국립대는 모두 공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학비감면 혹은 무상교육으로 공동관리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