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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허물어지는 상아탑> -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학문보다는 기업논리만 ‘횡행’하는 대학
총장=CEO···전통적 ‘스승’ 개념 허물어져
철저한 시장논리로 대학 평가하는 교육정책 바뀌어야
“스승의 날이 있기는 한건가요?”

15일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캠퍼스에서 만난 한 학생이 내뱉은 말이다. 학생도 스승도 모두 바빠 기념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말과 함께 대학에서 전통적인 ‘스승의 상’을 찾아볼 수 없다는 푸념을 남기고 사라졌다.

여기에 대해 교수들은 “사제지간의 정을 느낄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세태 탓으로 돌린다.

스승의 날은 현재 기념일로만 정해져 있을 뿐이다. 이미 90년대 이후 대학사회에서는 이 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대학사회 안에서 조차 “진정한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이 일반화돼 있는 게 현실이다.

여러 가지의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대학사회에 경쟁의 논리만을 존재하게 한 사회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싫든 좋든 대학사회에 깊숙하게 파고든 신자유주의 사조와 이에 편승한 교육정책은 철저한 시장논리로 대학을 평가하고 있고 대학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일관하고 있다.

권위적 재단이나 대학당국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고사하고 교수 신분 유지에 급급해야만 하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스스로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생존 앞에서는 총장과 교수 가릴 것 없이 영업사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던 대학관련 기사는 오늘의 대학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일반 기업의 행태를 닮아있으며 국민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지난 9일 이임식을 갖고 학교를 떠난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은 경영자(CEO)를 자처하며 개혁을 명분으로 독선적 행정을 펼친 결과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댖쳐 좌초했다. 시장논리와 세계화 강조에 따른 캠퍼스 구조의 파행적 행태는 이 전 총장의 경우 뿐만 아니다.

지난 3일 이사회에서 연임이 결정된 김정배 고려대 총장은 총장 취임이후 1천5백여만원의 소득세와 주민세를 직접 납부하지 않고 학교측이 대납해 온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측은 ‘관행에 따른 예우’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형식상 대학의 ‘어른’으로 평가되는 총장과 재단의 이같은 관계는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재단의 독선적 운영에 교수와 학생들이 농성을 벌이는 사태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도 시장논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비뚤어진 교육정책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흐름을 좇기 위해 대학은 무리한 경영이 불가피하고 교수도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성과만을 강조하는 비뚤어진 상아탑의 풍토에서 발생되는 끊이지 않는 논문 표절도 스승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저서 3편과 논문 2편을 표절한 것으로 드러나 대학으로부터 파면된 교수가 있는가 하면 일부 사학의 경우는 총장이 석사학위 논문을 표절해 퇴진압력을 받고 있는 낯 뜨거운 형국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학생들에게도 이제 교수는 더 이상 ‘옛날’의 스승이 아니다. 디지털사회로 접어들면서 교과과정을 통한 지식의 습득 비중이 줄어든데다 대학과 사회 모두 경쟁만을 주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정규상 학생복지처장(법학)은 “상아탑내의 ‘스승’ ‘제자’간의 부조화 문제는 사회구조의 변화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과거와 달리 대학의 광역화 등으로 학생들이 소속관념이 떨어진 것과 함께 이기적인 사회 추세를 따라가도록 만드는 환경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숙명여대 교육학과의 S교수는 “대학에 스승은 없다”고 단언하며 “‘스승’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 사회는 이데올로기화 해 묶어두려 하고 있으면서도 관심과 대접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경쟁에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점이 이미 캠퍼스내로 전이된 상태인데 대학에만 ‘스승’의 환상만을 좇도록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대학이 ‘학문탐구의 장’이라는 상아탑 본연의 역할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구성원 전체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진단이다.

“학생을 소비자로 생각하는 시장원리가 대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의 지적은 오늘날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한마디로 대변하고 있다. 대학에 CEO 논리가 팽배하면서 교수와 총장의 평가가 돈을 끌어 모으는 경영능력에 좌우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산업사회와 달리 디지털시대에서 ‘대학’과 ‘스승’의 개념과 역할도 일정부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이 학문연구와 인재양성의 큰 틀은 도외시한 채 규모만이 강조되고 기업논리가 판치는 구조에서 벗어날 때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승상’의 정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대학 구성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대희 기자>

이대희 기자 (news@unn.net) | 입력 : 02-05-13 오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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