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너무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는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풍요로움과 신속함을 누린다는 것이다. 세계가 하나로 묶임에 따라 각 국의 고등교육이 세계화, 개방화라는 흐름 속에 국제 경쟁력 강화를 핵심 목표로 세우고 있다.
우리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고등교육개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보고되었다. 개혁의 내용은 △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 △대학설립, 정원 및 학사운영 자율화 △학술연구의 일류화 △대학평가 및 재정지원 연계 △대학교육의 국제화 △열린 교육체제의 제도적 기반 구축 △대학입시제도 개선 등 다양하다.
제목만 열거하더라도 너무나 이상적이고 과학적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 속에 우리가 빠뜨린 단추 구멍하나만 갖추어진다면 화음이 잘 맞아 단계적인 발전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제기된 인성교육이 정작 교육현장에는 반영되고 있지 않은 현실적 우려에서 시작된다.
과학기술이나 지식의 습득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지능이 있다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어쩌면 대학이라는 기관의 필요 없이 독학이나 사이버공간에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험을 거친다든지 직접 기계를 만져보면서 친숙해져야만 가능한 분야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무색할 정도로 잘 정돈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고등교육 개혁에 무엇을 곁들여야 할지 꼼꼼히 떠져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평생교육 차원에서 보는 여가교육을 교육의 중심부에 접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가평생교육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그 범주지만 우선 우리 사회에서 시급한 대상은 고등교육을 받는 대학생이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사회에 바로 투입되기 때문에 대학생은 우리 사회의 형태나 풍토를 만들어 가는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노동하는 즐거움과 삶의 여유
그러면 왜 우리는 ‘여가’를 강조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개개인의 여가행태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 하는 날이 지루하고 고달프다고 휴일은 그냥 잠만 잔다면, 그의 삶은 단순하게 끝 날 것이고,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이렇다면 그 사회는 거듭나는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평일의 노동은 즐거움이고 보람있는 것이어서 노동의 효율성도 높고 휴일이나 휴가기간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라 여긴다면 개인에게는 행복이요, 사회나 국가로 보아서는 발전적이고 뭔가는 추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특히 21세기 첨단과학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기계문명에 의존한다.
기계는 편리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휴대용 전화나 컴퓨터를 편리하게 사용한다 해도 마주하며 감성을 나누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돈 때문에 저질러지는 경우를 우리는 짧은 기간 중에도 충분히 보아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극소수의 경우이긴 하지만 돈을 인간생명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사회문제는 심각하게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 범법자들 중에 고학력자가 과거에 비해 많다는 점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학력자라고 해서 인성수준도 덩달아 올라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셈이다.
아무리 고급 기능인이라도 근본적인 인간의 품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찬란하면서도 아름다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왜 우리는 기초질서를 지키자는 구호를 외쳐야 하는가. 지난 월드컵 기간에 응원단이 보여준 신선한 충격은 무엇으로 그렇게 되었을까. 바로 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모여 심각하게 고뇌해야 할 부분이다.
-. 프랑스 교육, 정부 지원 속에 여가활동 활력
프랑스 교육에서 찾을 수 있는 시사점은 이런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먼저 프랑스의 대학생은 기본적으로 ‘여가’를 누릴 줄 안다. 그들은 자유가 무엇이며 권리가 무엇인지, 깊고 폭 넓은 사고를 함으로써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되고 사회나 국가적으로도 유익한 결과를 산출시킨다.
그런데 그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우리처럼 방과 후 귀가해 다시 여러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공교육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대신 유급제도와 월반 제도가 있어 공부를 못하면 학년을 올려주지 않는다. 1년 정도 늦어진다 해도 부끄러워하거나 면박을 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본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사교육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니 학습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 점에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중등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본인이 부지런하기만 하다면 승마나 골프, 수영, 테니스 등 건강을 위한 여가활동도 즐길 수 있다. 구역에 따라 예산이 다르긴 하나 거의 정부나 시청에서 예산이 보조된다. 특히 예산이 넉넉한 구역에 살게 되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학생신분이면 여러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도 우리와 다르다. 마을 어느 어귀를 가더라도 나무와 꽃이 가꾸어져 있다. 그들에게 주어졌던 시간, 공간, 환경, 문화적 배경 같은 성장과정이 있기에 더욱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책임을 가지고 당당하게 발전한다.
게다가 프랑스 국립대학의 경우 우리 사립대학과는 그 역할이나 성격이 다른 이사회가 있다. 대학에 따라 이사회는 총장보다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대등한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
이사회는 △정책수립을 결정하는 이사회(Conseil d'admistration) △학술이사회(Conseil scientifique) △연구 및 학생생활 이사회(Conseil des études et de a vie étudiante)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이중 연구 및 학생생활 이사회(CEVU)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CEVU의 역할은 정규교육자와 평생교육자의 지도지침을 이사회에 제안하고 그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원하는 이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교육과정 계획 프로젝트를 알려준다.
CEVU는 학생들의 활기찬 일상생활이 될 수 있도록 학생들이 선호하는 문화활동이나 스포츠, 사교활동 등을 제공하는 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승인하고 기본 규정을 제안한다. 학생의 학업이나 학교생활 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기본규정을 추천하는 권리도 갖는다.
이사회 구성은 교수, 학생대표, 학내 행정․기술․노동․서비스직 중 일부 외부인사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들을 보조하는 예산은 대부분 국고에서 지원한다. 물론 우리처럼 자발적인 동아리 모임도 있고 학교에서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는 대학생이 되기 이전에 이미 지칠데로 지치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성장해 왔기에 대학에 와서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마구 망가지는 것을 탓 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사람들의 여가가 타락의 수준인 음주가무와 사치성으로 치닫는 현상에서 보듯 이제는 예방도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치료는 사회에서, 예방은 대학에서 여가교육을 중점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다.
-. 대학은 전문가보다 인간 만드는 장
그럼 이제 고등교육 개혁에서 빠뜨린 단추 하나를 아쉬워하면서 우리 교육에서 강조돼야 할 여가평생교육에 대해 살펴보자. 프랑스는 우리 보다 넓은 땅과 아름답게 우거진 자연환경 속에서 개혁을 일회성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면서 이루어 왔으며, 어릴 적부터 여가생활을 체계적, 제도적으로 길러왔다.
여가란 노동이 전제된 삶이요, 수고하여 주어지는 선물을 자신에게 유익하도록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자발학습이다. 더 쉽게 설명하면, 노동을 우선하되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 수입이나 휴가, 자유시간 등을 통해 인생을 아름답게 운전해가는 것이다.
각자의 터에서 수고하여 얻은 돈을 마구 낭비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소비교육, 주어진 자유시간을 진정한 여가시간으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관리교육, 건강하고 소중한 여가생활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여가활동교육, 쌓인 울분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고 터트릴 수 있는 긴장완화교육, 더불어 행복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대인관계훈련 프로그램, 즐겁게 일 할 수 있을 만큼의 노동교육 등.
이러한 것들이 뒷받침 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능력 범주 내에서 적절한 예산투입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교육 못지않게 고등교육기관에서는 지도 하나만 가지고 수많은 복잡한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우리 대학에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의 CEVU 제도를 우리 체질에 맞게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교수가 지도하면서 학생과 그 이외의 구성원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현재 대학에서 각종 동아리에 한 두명의 지도교수가 이름만 올려져 있고 예산도 학생들 주머니에서 해결하는 선에서는 절대 부족하다.
예산이 주어져도 이상한 곳으로 흘려버리지 않을 정도의 책무성을 부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한다. 우리의 자연환경이 그들만큼 풍족하지 못하다 하여 교육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식으로 만들고 살리면서 사람을 키워야한다.
대학교육은 사육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길러줄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여가평생교육을 시급히 실시해야 한다.
동시에 유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평생교육 차원에서 ‘여가교육’을 주먹구구식이 아닌 체계적, 조직적, 합리적, 인본적인 방법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자면 이론전문가, 적절한 곳의 예산투입을 위한 행정전문가, 그리고 체계적인 프로그램 실시를 위한 평생교육프로그래머가 한 자리에 모여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학은 전문가만 산출(output)하는 기관이 아니라, 빠르고 험악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도 침착하게 ‘인간’을 길러나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 빠뜨린 단추 구멍 하나를 메우려면, 프랑스처럼 교수 1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학생 수를 줄이고 제한해야 한다. 교수는 전문지식도 가르쳐야 하겠지만 따뜻한 심장이 뛰는 인간을 지도해야 한다.
감정이나 자아 없는 상황에서 창의력을 기를 수 없는 똑 같은 공장 제품생산식의 교육개혁은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한다. 대학은 다만 의식주 해결을 위한 딱 하나의 길만 안내하는 기관이 아니다. 대학생들은 처참하도록 외롭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가진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