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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종의 대학빅사(16-2)여왕 열풍 일으킨 이화학당 메이퀸
1908년 5월 31일, 서울 정동의 이화학당 교정에서는 진기한 행사가 펼쳐졌다. 창립 24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개교 기념 축제를 열고 메이퀸(오월의 여왕)을 선발, 대관식을 갖는 것이었다.

초대 메이퀸으로 선정된 이는 학교 창설자인 스크랜톤.

흰옷에 붉은 댕기를 매고, 미투리를 신은 전교생이 행진하는 가운데 5월의여왕이 중앙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으면 푸른 나뭇잎과 생화를 갖고 서 있던 학생들이 "당신을 여왕으로 모십니다"라고 합창하면서 엄숙하게 화환을 여왕에게 씌워주는 것이었다.

초창기 이화학당의 메이퀸은 학생이 아니라 이처럼 학교의 유공자나 존경받는 교사들 중에서 뽑혔다. 1914년의 메이퀸 최활란이나 1920년의

처치, 1923년의 밴플리트도 학생들 사이에 인기있던 교사였다. 1917년에는 당시 학생 신분으로는 유일하게 김활란이 뽑히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학생들 가운데 메이퀸이 뽑히게 된 것은 1927년 이후부터였다.

그리고 1933년부터는 일제의 종용으로 메이퀸 대신 자세 여왕을 뽑았다. 대륙침략을 앞두고 준전시체제가 강요되면서 자세가 곧고 걸음걸이가 아름다우며, 균형잡힌 체격을 지닌 학생을 선발하게 된 것이다.

1937년 중지됐던 이 행사는 1947년 아펜젤라 교장의 환갑잔치와 더불어 부활됐다. 그 후 사회적 혼란, 6 25 등으로 인해 또다시 중단됐다가 1956년 학교

창립 70주년 메이데이를 기해 다시 시작됐다. 이때 메이퀸의 자격은 대학 4학년의 기독교신자로서 신앙생활이 돈독하며 성적(3.0이상)과 품행이 우수하고 활동적이며 지도력이 있는 사람 중 키가 1백 60㎝ 전후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송계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던 연세대에서도 60∼70년대 메이퀸 선발대회가 있었다. 옆에 위치한 이화여대생들에게 남학생들을 뺏기기 +아쉬워 한 연세대 여학생들의 자체적인 움직임이기도 했지만 당시 메이퀸이라는 의미는 가장 아름답고 지적인 여대생의 대명사였기 때문. 숙명여대 등 다른 여자대학에서 메이퀸을 경쟁적으로 선발한 것도 이런 동기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화여대의 메이퀸은 70년대 들어 성의 상품화로 착각되기 쉽거나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등의 논란이 일다가 78년에 24개의 과가 후보 선발을 거부하면서 폐지되었다. 축제 때 선보이던 이화여대의 쌍쌍파티 역시 이런 이유로 82년도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시대는 다시 바뀌어 지난 98년에는 한 재학생의 슈퍼모델 선발대회 참가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이화여대가 이를 허용하기도 했다. 이유는 역시 '시대가 변한 만큼'이라는 것. '재학 중 혼인금지' 등 해방 이후 +보수적인 학풍을 유지해온 이화여대로서는 당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이일형 기자 (news@unn.net) | 입력 : 00-06-30 오후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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