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단체들이 이 의원에 대한 과거의 공과를 들어 ‘총리 지명 철회’를 요구한 것과는 달리 교육부 고위 관료들은 교육문제를 비교적 잘 아는 이해찬 의원이 총리에 오를 경우 참여 정부 들어 주춤했던 교육정책 추진과 재정 투자 확대 계획에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이의원과 장관 시절 같이 일했던 일부 관료들은 “당시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공과가 엇갈리고 있지만 가장 신명나게 일했던 시기였다”며 환영 의사를 감추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의원은 9일과 10일 여야 각 당을 잇따라 돌며 총리 인준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서 곧 이어 예정된 국회 인사 청문회에 교육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이해찬 효과 기대 = 교육부 고위 관료들은 일단 국회의 총리 인준 절차가 남아있는 상태여서 논평이나 의사 표현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 의원이 총리로 입각할 경우 교육정책이나 재정 확보에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했다.
예산부서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교육재정에 대한 비전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아 정책에 힘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 의원이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아는 만큼 정책 추진에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료들은 특히 고등교육재정지원법이나 대학 구조조정 기금, 포스트 BK 사업 등 향후 예산이 수반되는 교육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학 정책 수립을 주관하고 있는 한 국장급 인사는 “이 의원이 당시 논란 속에서도 BK 21 사업을 강력히 추진한 장본인이었던 만큼 2006년으로 예정된 포스트 BK 사업 추진 등에 당장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정책 추진 공과를 놓고를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인적자원총괄국의 한 인사는 “이 의원이 어느 장관보다 탁월한 리더십과 조직 장악력, 추진력을 보여줬다”며 “교육개혁에 대한 비전 제시나 대입제도 개선안, 대학개혁 방안 등은 아직도 여전히 교육정책의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과 장관 시절 같이 일했던 한 관료는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공과가 엇갈릴 수 있지만 교육부 관료들이 가장 신명나게 일했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반면 학교정책실의 한 관계자는 “교사를 개혁 대상으로 삼고 교원 정년 단축을 강행해 학교현장에서는 논란도 적지 않았다”며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는 만큼 교육정책에 대한 신중한 접근 태도가 필요하다”고 회고했다.
◇ 총리 지명 철회 요구 = 교육부 분위기와는 달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권단체는 ‘공교육 붕괴의 장본인이 사회 통합과 경제회생의 주역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며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총은 9일 긴급 성명을 내고 ‘교원 정년 단축 등으로 공교육 붕괴의 단초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킨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의 총리 후보 지명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교총은 또 ‘한 가지만 잘하면 무시험으로 대학 갈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발표로 ‘이해찬 1세대’들의 학력 저하 현상이 빚어졌고, 교직의 특수성을 무시한 성과급제나 학생 담임선택제 도입 시도 등도 이 전장관의 설익은 정책으로 꼽았다.
교총은 특히 “무리하게 추진한 BK 21은 대학교수들을 4·19 이후 처음으로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고, 장관 재임 1년 2개월 동안 교육은 가히 혼돈의 연속이었다”며 “이 전 장관은 총리후보로 나설 것이 아니라 자숙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도 9일 성명을 통해 “장관 재임 시절 교원정년단축 등 시장주의 구조조정을 교육계에 본격 도입했을 뿐 아니라 '한가지만 잘해도 대학갈 수 있다'는 허황된 발언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특히 “교육계에서 시장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빈부격차 해소, 계층간 갈등 완화 등 사회통합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시장주의 선봉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해서는 안 돤다”고 밝혔다.
◇ 교육정책 공과 논란 = 이의원은 지난 98~99년 국민의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1년 2개월여 재임하면서 교단 개혁과 교육개혁을 동시에 추진해 숱한 화제를 낳았다.
특히 대입제도 개혁, 두뇌 한국 (BK) 21 사업 강행, 교원 정년 단축 등의 개혁정책들은 당시 교육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모으며 아직까지 공과에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
‘하나만 잘해도 대학 간다’로 대변되던 당시 대입제도 개혁안은 성적 위주의 관행이 정착된 고교 교육 현장에 특기적성 교육과 각종 경시대회가 봇물을 이루는 등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학력 저하 시비에 휘말리면서 ‘이해찬 세대=노는 세대’ 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대입제도 개혁안의 대체적인 기본 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끼있는 사람들의 교육 문화 예술계 활약상이 전파되면서 공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리는 상황.
BK 21 사업 역시 특정 대학에 지원금이 집중되면서 4·19 이후 최대 규모로 회자되는 교수들의 대규모 가두시위가 전개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재정 지원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학 정책의 전형을 낳으며 대학사회에 평가 열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교육부는 특히 BK 21 사업의 경우 연구비 유용 등 일부 잡음이 있었지만 과학기술분야의 핵심 인력 양성과 국제 학술지 발표 논문 실적 향상 등 성공적인 성과를 이끌어냈다며 포스트 BK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늙은 교사 1명 내보내면 젊은 교사 3명을 쓸 수 있다’는 비아냥이 회자되면서 시작된 교원 정년 단축은 당시 전체 교사 3명 중 2명 꼴인 22만4천여명이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1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등 교단이 크게 동요하면서 결국 장관직을 내놓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의원은 최근 이에대해 당시 개혁 상황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도 “선생님들에게는 죄송하게 됐다”고 말해 정책 추진 과정이 치밀하지 못했음을 간접 시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