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적 전환기로 일컬어지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우수 두뇌가 밀집한 대학 인적 자원의 활용과 지식 양산의 극대화는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관건은 구성원의 의식 전환 못지않게 대학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의사결정구조나 제도적인 틀로 비롯된 교육 시스템 전반의 개혁이 수반되지 않고는 달성하기 어렵다.
본지는 상반기 결산으로 최근 교육 단체들이 대학과 관련 인사를 상대로 잇따라 개최한 세미나 내용을 통해 국내 대학의 현실을 재조명하는 기회를 가졌다.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위원장 배무기 울산대 총장)가 지난 5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21세기 지식강국 구현을 위한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 토론회는 전 현직 총장과 교수 및 관련 인사가 나와 공동의 현안에 대해 열띤 발표와 토론을 벌여 주목됐다.
■ 대학의 지배구조 개편 논란
‘대학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란 주제 발표에서 장수영 교수(전 포항공대 총장)은 미국, 영국, 일본, 홍콩의 7개 유명대학의 지배구조 사례를 제시하고, 국내 대학의 개편방안에 대해 △국립대학간 기능별 통합 분리 △국립대 이사회 설치 △사립대 이사회 개편 △총장선임제도 개선 △총장보좌제도 확립 등의 5가지 개선안을 냈다.
장교수는 먼저 국립대 통합 방안에 대해 지리적으로 인접한 대학군을 13개 권역별로 열거하면서 “교육대와 일반대, 산업대 등 다양한 특성을 지닌 국립대학을 한 가지 방법으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립대학간 기능별 통합분리 방안과 대학연합체제 구축을 포함한 이사회 도입방안이 검토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장교수는 특히 국립대 이사회에 대해 미국 캘리포니아 연합이사회의 예를 들며 설립 역사가 오래된 9개 국립대와 13개 후발 국립대로 제 1, 2 이사회로 만드는 한편 교육대이사회, 산업대이사회, 방송통신대이사회, 서울대이사회 등 6개 기능적 특성으로 구분해 연합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안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장교수는 또 사립대 이사회 개편방안에 대해 “사립학교법에 명시된 7인 이상의 이사 정수를 늘려 총장과 부총장은 당연직 이사로 하고 교수대표와 직원 대표, 졸업 동문을 포함하되 대학이 법인 사무국 역할을 수행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총장선출제도와 관련해서는 현재의 직선제 총장 선출 방식을 바꿔 총장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되 국공립은 정부에서, 사립은 이사회에서 선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 이와함께 현행 처장제도를 없애고 분야별 부총장제도를 둬 총장을 보좌하고 실질적인 행정 권한을 위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장 교수가 제시한 5가지 방안은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대학가 논란이 거센데다 국립대 특별법 마련이 임박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열띤 반론이 이어졌다.
고홍석 전국 국·공립대교수협의회장(전북대)은 토론에서 “장교수의 이사회 설치 방안은 대학기구의 법제화 의결기구화를 통해 자율과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교수단체들의 오랜 소망과 노력에 정면 배치된다”며 “총장선임제 역시 직선제 선출의 단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과거 임명제가 정치권의 역학관계에 종속되고 타율적 관행에 얽매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의 간선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윤정일 교수(교육)는 국립대학 연합이사회 구성과 관련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대학의 획일화를 조장하고 대학간 선의의 경쟁을 저해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예산과 인력 배분에 있어 지역간 갈등만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명무실한 연합이사회보다는 대학별 이사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학사 운영 자율화 방안
경북대 박찬석 총장은 이날 학사 운영 자율과 관련한 주제 발표 서두에서 “교육부는 대학에 자율권을 99% 주었으므로 모든 것은 대학 자율에 밑겨져 있다고 말하지만 대학에 물어보면 아직도 교육부가 99%를 맡아 모든 것을 지휘, 감독한다”며 “국립대 총장을 8년간 경험한 현직 총장의 입장에서도 대학 자율성은 적다”고 말해 당국과의 인식차를 반영했다.
박총장은 특히 교육 관료들의 의식 내면에 “대학에 자율성을 더 많이 주면 반개혁적으로 이기주의와 편의주의에 빠져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며 “대학에 일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야 고등교육이 바로 잡힌다고 생각하는 것이 주류”라고 꼬집었다.
박총장에 따르면 이런 의식이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 현실을 모르고 편의주의적 행정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것.
박총장은 이 같은 인식차는 “근본적으로 고등교육을 규정하는 법률이나 회계제도 규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며 “정부가 자율을 주었다는 것은 법 테두리에서 보장한 것이므로 법률이나 규정 자체가 현실에 맞지 않을 때는 방법이 없다”고 말해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박총장은 그러나 “이같은 현실에서도 학사자율이나 개혁방안은 모색돼야 한다”며 △교수에 대한 업적·연구·봉사 평가 △연봉제와 계약제 도입 △복수학위·자율전공제 시행 △샌드위치 교육과 해외 인턴쉽 도입 등 경북대가 제도 도입을 통해 거둔 학사자율 사례를 들었다.
토론에 나선 윤정일 교수는 대학 자율에 대한 발표자 의견이 분명치 않다고 전제하고 개인의견임을 들어 △대학을 보는 정부 시각차 변화 △학생선발이나 정원, 재정 운영에 대한 자율권 부여 △대학 자체의 책임경영체제 확립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 사무총장은 “정부와 대학간 인식차는 법이나 제도 측면 뿐 아니라 운영과정에서 실질적인 자율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명목적 자율보다 실천적 자율이 중요하며 이웃 일본의 대강화 원칙과 중국의 통일과 다양성 정책에 시사점이 크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 “대학 학사운영이나 지배구조 개편과정에서 전제돼야 할 것은 나 먼저의 자율에서 벗어나 우리 자율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수요자 중심 체제에 맞는 공급자적 기득권 해소 노력도 필요하다”며 “재단이든 총장이든 교수든 캠퍼스 윤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특히 “국내 대학 가운데 올해 입시에서 모집 정원의 45%를 못 채운 대학이 30개에 달하는 현실에서 정부나 기업, 학부모는 대학에 책임만 강조하고 재정지원이나 의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며 “지금 대학은 방임되고 있으며 학대받고 있다”고 말해 국내 고등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현주소를 단적으로 대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