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해방 후 줄곧 대학에 대해 자유방임적 자세를 취해 오던 정부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학과 및 대학의 신설, 학생정원 책정, 교육과정의 편성, 연구비 배정 등 광범한 영역에 걸쳐 대학운영에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 기 시작했다.
대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된 두 번째 이유는 정부가 스스로 대학의 질 관리를 위한 책임을 이행하려 한데 있었다.
해방후 고등교육의 급속한 팽창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학의 질 문제가 야기되었다. 정부는 교육은 공공성을 가진 국가사업이므로 +대학교육의 질을 유지 향상하기
위해서 직접 개입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의 설치, 시설, 교수, 교육과정 등에 관한 각종 기준을 제정하여 대학에 부과하고 감독해 왔다.
그리고 정부는 대학의 질
향상을 위한 개혁정책을 직접 수립하여 추진하고 재정지원도 실시해 왔다. 정부의 재정지원은 공공재정의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통제의 숨겨진 손을 움직여야 했다.
셋째, 지난날 한국 대학들이 저질러 온 갖가지 부정비리를 예방하거나 척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선 것이 정부의 대학통제를 강화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 교수채용, 예산집행, 기자재 구입 등과 관련해서 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왔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교육 체제에 대한 감독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의 부정비리를 예방하기
위해서 정부는 공정한 대학운영을 위한 자세한 행정지시를 대학에 내리게 되었다.
정부는 한편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위한 지식인들의 강력한 요구를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에 대한 철저한 감독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을 동시에 받는 서로 모순되는 압력의 덫에 걸려들기가 일쑤였다.
넷째로 대학의 만성적 학원소요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가 대학의 학사에까지 깊이 개입하게 된 것이 정부의 통제가 강화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한 때 경찰이 학원에 주둔하여 학생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학생소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한 적도 있었다.
정부는 학원소요를 방지하기 위해 교
수들의 학생지도에 관한 구체적 사항에 이르기까지 대학에 지시를 내렸다. 특히 정권의 정당성이 취약한 시기의 학생운동은 정권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었으므로 그러한 시기에 정부의 통 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대학은 정부에 대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게 되었고 80년대 말 사회의 민주화운동이 고조되면서 대학의 자율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 층 더
높아졌다.
그래서 정부도 대학자율화 정책을 채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정원 책
정, 학교 및 대학 신설, 총·학장 선임, 교육과정 편성, 입시전형 방법의 선택 등 여러 부문에서 대학은 상당한 정도의 학원자치권을 정부로부터 부여받게 되었다.
사실은 부여받은 것이 아 니라 쟁취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다소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주로 행정적 통제, 힘에 의한 통제에 의존했으나 근래에는 재정적 통제, 돈에 의한 통제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통제의 성격이 바뀌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규제적 통제에서 조성적 통제로, 감독에 의한 통제에서 평가에 의한 통제로, 지시에 의한 통제에서 경쟁에 의한 통제로 전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정부의 대학행정이 크게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을 둔 그러한 대학정책에도 많은 함정이 숨어있다.
'평가에 의한 차등지원 정책'은 평가기준에 따른 획일화의 위험이 있고 고등교육 분야에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불평등과 불균형의 위험도 있으며 '돈에 의한 통제'도 '힘에 의한 통제'와 마 찬가지로 대학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또다른 위험이 있다. '돈에 의한 통제'가 대학자율성을 보장 하는 완벽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상주(전 울산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