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의 메카' 혹은 '고시생 집단 수용촌'이라는 별칭이 달리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 수있다.
고시합격을 위해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고시생들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인들만이 살아가는 마을인 것이다.
그래서 신림9동은 서울에 버젓이 자리하고도 사회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곳 역시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때 3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던 고시생의 숫자가 지금은 2만명을 조금 넘는데 불 과하다.
고시공부에 드는 각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고시촌을 떠나는 고시생들이적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원 등록비와 식비는 적게 잡아도 한 달에 40만원 선이다. 수강료나 교재비 등으로 한 달에 20여만원 정도 지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검소하게 살아도 60만원 이상이 든 다.
이 때문에 특히 지방출신 고시생이 공부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일이 부지기수로일어난다.
월간『고시연구』의 박계노 주간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고시인구가 급증했을 것 이라는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고시생은 크게 늘지 않았다"며 "대졸미취업자나 실직자 등이 고시촌에 새롭게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 숫자는 지극히 적으며 오히려 빠지는 인원이 많아 신림동만 놓고 봤을 때 전체적으로 20~30% 정도 인원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남아있는 고시생들도 예년과는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4년간 사법고시를 준비해 왔다는 최모씨(32)는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라 모든 비용을 부 모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요즘은 돈줄이 끊기는 바람에 생활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앞날에 대한 다른 대책이 없어 고시를 포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 다.
일부 고시생의 경우 금주/금연을 단행하고 학원수강 과목을 줄이는 등 생활비 절감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뻔한 고시생 살림에 별다른 효과를 내기란 어렵다.
그러나 이같은 생활고보다 고시생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따라 고시합격의 문이 좁아졌다는 사실이다.
행정고시의 경우 정부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선발인원을 줄이는 바람에 지난해 1천23명
이던 것이 올해는 8백32명으로 대폭 줄었으며 이같은 감소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사법고시도 1차 시험 응시기회가 4회로 제한되는 등 고시에 합격할 가능성이 보다 희 박해졌다.
고시생이 합격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조차 갖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 다.
실제로 현재 2만여명의 고시생 가운데 실제로 '고시생답게(?)' 공부에 전념하는 사람은 대 략 8천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나머지는 고시생이라는 어정쩡한 신분을 유지하면서 대책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다른 일을 모색하기란 이미 늦어버린 이들은 고시촌을 떠나지 도 못한다. 특히 IMF 한파 이후 이들은 오갈 데 없이 고시촌에 완전히 발이 묶여 버린 처 지다.
3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박종구씨(32)는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 서러움과 고뇌를 술로 달래는 경우도 많다. 고시생들끼리 술에 취해 다투다가 파출소에 불려 가는 일도
종종 일어나는데 이는 고시생들이 절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 다.
T고시원 원장은 고시생들이 일으키는 사고를 무마시키기 위해 인근 파출소와 지속적인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고시학원이나 고시원을 비롯한 신림동 상인들도 고시생들이 빠져나가 울상을 짓고 있 다.
지난 88년 개원한 이래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별탈 없이 운영해 오던 D고시학원의 경우수강생이 급감하는 바람에 지난해 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유명 고시학원인 H학원과 T학원도 각각 20% 이상 수강생이 줄었다.
20년 역사를 가진 고시원인 문창학당의 경우 평소 1백60여명의 고시생을 유지했으나 지금은 1백명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밖에 대부분의 고시원이 적어도 20% 이상, 많게는 50%까지 고시생이 줄었다.
예전의 활기와 열기가 사라진 신림동 고시촌에는 무기력과 절망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