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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러플린’호, 좌초되나
이사회, 카이스트 비전 ‘함량미달’ 평가
러플린 카이스트 총장을 통한 국내 대학의 세계 일류대학 4강 진출 꿈은 멀어지는가.

카이스트 이사회(이사장 임관 삼성기술원장)는 18일 결산회의를 겸한 총회에서 러플린 총장이 상정한 카이스트 장단기 발전계획 ‘카이스트비전’(KAIST VISION)을 ‘기대수준 이하’로 평가하고 통과 보류시켰다.

이에 따라 이사회가 끝나는 9시30분 경 열릴 예정인 카이스트비전 설명을 위한 기자간담회는 장단기발전계획이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약식 회견으로 대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이에 앞서 취재진에게 미리 배포된 기자회견문 및 ‘카이스트 비전’ 책자는 카이스트 직원들에 의해 급히 회수됐다.

회수된 카이스트비전은 지난해 말 러플린 총장의 사립화 파문이후 총 21명의 교수들로 팀을 만들어 안을 성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학생들의 영어교육강화 △비한국인 교수비율을 15%까지 확대△의학 경영 경제 법학을 위한 트랙 추가 등을 주요내용으로 담고 있다.

러플린 총장은 이날 사태에 대해 “학교에서 카이스트비전을 이틀 전 이사들에게 전달한 이유로 이사들이 검토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이사들은 비전 내용이 한국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좀더 검토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러플린 총장은 또 “과기부와 학교가 이미 큰 틀에서 공유하고 있고 합의했기 때문에 뼈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본지가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을 취재한 결과, 이번 이사회의 카이스트비전 거부는 단순히 장단기 발전 계획 검토 시간 부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러플린 총장 능력에 대한 회의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날 참석한 이사 가운데 4명의 이사가 정부파견(과기부, 산자부, 교육부, 기획예산처)이사임을 감안한다면, 이날 회의분위기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날 참석한 한 이사는 “이사회 회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배포된 내용이 구체적이지도 않고, 이미 국내 다른 대학에서 시행하는 것을 재탕하는 수준이었다. 이사들이 얘기한 것은 우리나라도 이젠 일류기업이 있는 만큼, 이들 기업을 이끌어갈 일류 인재를 만들 전략과 비전을 제시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한 이사는 “계획을 성안하는 과정에서 교수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안들이 들고 나는 일들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러플린 총장의 미국식 언어와 문화가 내부 구성원과 안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또 “과기부는 아마 이사회에서 당연히 통과될 줄 알고 기자회견까지 준비했겠지만, 이사들은 지금의 결정이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진로와 국가과학기술의 미래를 결정한다는데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당국이 세운 학교장단기발전계획을 이사회의 거부(?)로 확정시키지 못한 것은 국내 대학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국내 과학기술시스템과 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던 러플린 총장이 지난해 사립화 파문에 이어 이번 이사회의 카이스트비전 거부 파문으로 오히려 혼란만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러플린 총장은 다음달 14일 귀국 일정으로 18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그가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과연 무슨 고민을 할지, 그리고 러플린 총장을 통해 국내 대학개혁을 꿈꾸던 정책입안자들이 어떤 방책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송찬영 기자 (news@unn.net) | 입력 : 05-03-18 오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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