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에 하자나 결함이 발견될 때 우리는 반품, 수리, 혹은 리콜을 해야 한다는 등의 애프터서비스를 강하게 요구하며, 생산자 측도 이에 대해 대체로 순순히 서비스에 응한다.
그러나 대학은 어떠한가? 거의 모든 대학들이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한 홍보에서부터 항상 부르짖는 것은 첨단의 시설과 최고 수준의 육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임을 표방한다.
과연 모든 대학들이 이러한 공적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생산해 내고 있는가? 소비자들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구매한 조그만 물건에서라도 결점이나 불량품이 발견되면 즉각적으로 민감한 소비자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러나 정작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대학교육을 통해 얻어진 대학의 제품에는 아무리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어도 누구하나 생산자에게 수리나 보상을 요구하는 이가 없이 관대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풍토에서 대학들은 근본적인 품질관리나 서비스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항상 뒷전이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매년의 신입생모집에 온갖 감언이설을 다 늘어놓는 뻔뻔함을 자행하고 있다.
미국대학의 전통과 변화의 물결
미국대학들도 현실은 우리와 비슷하다. 60-70년대의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화해의 물결, 그리고 는 탈 이데올로기시대로의 시대적 변화와 함께 이제 미국의 대학들도 더 이상 변화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그 동안의 비교적 안정된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양적 성장을 이룬 대부분의 대학들이 이제는 학생수의 팽창과 함께 안정적 재정의 확보 및 교육의 질적 향상 그리고 경영관리에 적극적 전략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인식한 대부분의 미국대학들은 대학이 더 이상 고전적 학문의 전당으로서 상징적으로 존경받는 상아탑의 모습만을 추구할 수 없으며,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변화하고 대처하는 대학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현대적 원리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어울리는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적극적 경영 및 품질관리를 지속적으로 펼치는 한편 안정된 재정의 확보와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총체적 품질관리란 원래 기업경영에서 사용되던 말로 기업경영에서 생산제품의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기업 내의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하여 경영전반의 품질을 향상시켜 고객의 만족도를 극대화하려는 일종의 경영전략이다.
이러한 경영기법이 급변하는 시대에 대학이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적극적 사고에서 적용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일반화된 용어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관리기법 하에 대학들은 대학을 하나의 경영대상으로 인식하고 학사 및 재정 등의 모든 분야에 이러한 원리에 입각한 경영체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학의 총장은 더 이상 학자로서의 최고의 상징적 자리가 아닌 최고 경영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되고 대학 구성원들은 경영 집단의 그들과 같이 책임경영과 조직의 일원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경영원리에서는 대학은 이제 공급자중심의 제왕적 학사관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게 되고 수요자중심의 서비스관리로 전환한다. 교과과정의 예를 보더라도 전통적 개념에서는 ‘교과과정을 바꾸기는 공동묘지를 옮기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는 교수중심의 교과과정이 학생의 요구와 현실적 요구에 맞게 고쳐지고 전공학과의 설치도 고전적 순수학문 중심의 대학들도 현실적 요구를 수용하여 기술과 정보 등의 응용학문영역에 더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
교수방법에서도 역시 교수의 강의노트나 저서에서보다는 학생들의 창의적 활동과 의견을 중시하고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데 우선권을 두고 있다.
대학의 총장과 주요 보직자들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에 요구되는 지도력을 갖출 것이 요구되며 어느 한사람의 결정과 집행으로만 학사운영이 좌우되지 않고 학내 구성원들의 충분한 토론과 의견수렴의 단계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행정체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학생들은 개혁의 희생양이 아닌 수혜자로서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개혁에 주도적으로 동참함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보장받고 있다. 또한 대학은 학내 구성원은 물론 산학연간의 동반자관계를 확고히 하여 이해당사자간의 상호 이익을 증대시키며 공생의 묘를 살리는 것은 우리가 본받을 면으로 지적하고 싶다.
총장의 리더십
미국대학의 개혁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총장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최근 우리의 대학들도 소위 경영총장이니 CEO총장이니 하는 용어를 흔히 쓰고 있으며, 외부 유명인사를 총장으로 청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자가 보는 견지에서는 여기에 미국대학의 총장들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우리대학들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대개 총리나 장관 등 국내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총장으로 영입하여 관계기관이나 정부에 소위 줄을 대어 대학운영에 원만한 지원과 이를 통한 비교적 손쉬운 발전을 꾀하려는 의도가 짙게 엿보인다.
이른바 경영총장이라기보다는 로비총장을 원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미국대학의 총장들은 대개 총체적 경영마인드와 리더 싶을 중시하여 선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총장은 임기 중 자신의 경영방침과 중장기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한다. 이를 위해 적절한 로비도 필요하며 자금 확보와 관리도 매우 치밀하게 수행한다.
우리주변의 대학들에서 흔히 보이는 것처럼 총장이 교비를 유용했다든가,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등의 스캔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우리대학들은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명예롭게 퇴임하여 총장의 이름이 붙은 학교건물이나 시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대학의 건물이나 도서관등에는 재임당시의 총장이름을 따서 붙인 시설물들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혹은 거의 모든 건물들이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미국대학 총장들의 가장 큰 임무는 학교발전과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적 후원을 끌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총장은 대학의 최고 세일즈맨이며 자금동원 책임자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능력이 뛰어난 총장은 이사회로부터 하급 교직원에 이르기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기보다는 대학구성원 모두의 공으로 돌리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지식의 흐름: 연구중심이냐 교육중심이냐?
전통적으로 미국의 큰 대학들은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 대학들인 반면 소규모 대학들은 교육중심대학들이다. 우리는 큰 것을 선호하는 민족적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대학도 큰 종합대학이라야 좋은 대학으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연구중심 대학들은 교수와 박사과정 생들에게 연구비와 학비 등을 집중지원하고 교육의 주체나 객체도 대학원생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교수들은 주로 대학원생들의 지도에 열중하고 학부 생들 교육의 상당부분이 박사과정 생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현상에는 장단의 점이 있다. 여하튼 지금은 연구중심의 단점들이 많이 지적되고 학부 생들의 교육에 보다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연구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연구중심 체제는 가장 중시되어야하고 대학의 근간이 될 학부교육을 도외시하고 그들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현실도 비슷하다. 현재 대부분의 우리 종합대학교들은 이런저런 형태의 대학원 과정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대학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하여 별도의 교수진을 갖추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저 있는 교수진을 좀더 활용한다는 측면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극한 예로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한 강좌씩을 담당한 교수는 실제로 학부수업을 전혀 혹은 거의 담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된다.
결국 학부수업은 합반 수업이나 강사에 의해 대체됨으로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다. 장학금이나 연구보조비와 같은 학비보조도 마찬가지로 주로 박사과정 생들 중심으로 배정되어 상대적으로 학부 생들은 혜택에서 제외되고 교육의 질도 떨어지는 희생의 제물이 된다. 이런 맹점을 미국대학들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서 깊은 명문대학들일수록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고색이 창연한 낡은 건물과 옛스러움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만이 더 이상 명문대학의 상징은 아니다. 명성만큼이나 시설과 교육환경의 변화가 요구된다. 미국에서 관심을 끄는 대학들은 대부분 공부하는 데 필요한 환경뿐만 아니라 생활과 여가를 위한 캠퍼스환경의 조성에 신경 쓰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대학들은 그들의 캠퍼스를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입장수입과 관람료, 상품판매 등을 통한 수입도 매우 짭짤하다. 이는 캠퍼스가 오직 학문의 전당으로서 더 이상 갇힌 공간이 아니며 변화하는 사회속의 일부로서의 기능과 지역사회 주민들에겐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으로 그 패러다임이 또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을 예로 보자. 대학도서관은 학생들의 학문의 산실이면서 지역사회의 정보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자료와 시설을 필요로 하는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함은 물론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공하기위한 이벤트를 끊임없이 준비한다.
말하자면 지식을 감금시키고 혜택 받는 제한적인 소수만이 독점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 퍼주는 사랑을 베푸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체육관도 그러하다. 대부분의 대학 실내체육관은 학생들은 물론 지역주민의 활력의 공간이다.
예를 들면 1년 단위의 회원권을 구입하여 자신이 즐기고 싶은 실내스포츠나 여가활동을 매우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대학주변은 정말 살만한 곳으로 각광받는 곳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