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선 고교교사의 말이다. 교사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된다면 그 교사에게 배우는 학생들도 영어 의사소통 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대학에서 우수한 예비 영어교사를 선발해 견실한 교육을 시켜 자격을 갖추게 한 뒤 일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영어교육 시스템에서 우선돼야 할 일이라는 것이 여러 관계자들의 얘기다.
미국 뉴저지 주의 리지우드 고등학교에는 외국어로 서로 의사소통하는 교사들이 많다. 프랑스어 교사는 학교에서는 교실에서는 물론이고 교실 밖에서도 학생이나 동료 프랑스어 교사와 대화할 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스페인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위한 외국어와 친숙해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초중등 영어교사들에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것(TEE: Teaching English in English)을 권장하고 있다. TEE를 위해서는 원어민 보조교사들을 대폭 영입하든지 아니면 TEE 능력이 부족한 교사들을 공부시키는 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내국인 교사들의 연수나 원어민 보조교사 영입에는 모두 거액의 예산이 소요된다.
◇ 교실영어 = 영어 원어민 보조교사 영입이나 국내 영어교사들의 TEE는 학생들에게 영어 대화 능력을 키워주려면 당연한 정책이다. 그러나 문제는 원어민 영입 예산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영어 수업이 가능한 국내 교사들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 지난해 9월 원어민 교사를 초등학교에 50명, 중등학교에 50명을 배치했고, 올해에도 8월말께 초등학교 50명, 중고등학교 50명을 배치할 예정이다. 예산 문제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수의 원어민 보조교사를 영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담당 장학사의 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지난해 현재 1천183명의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가 초청돼 영어 교육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의 국적을 보면 캐나다가 487명으로 41.2%에 달했고 그 뒤를 460명(38.9%)의 미국이 차지했다. 나머지 20%는 뉴질랜드, 호주, 영국 등에서 온 원어민들이었다.
교육부는 원어민 보조교사를 올해말까지 1천950명으로 늘리는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2010년까지 3천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2천900명으로 증가시킨다는 계획이다. 즉, 2010년까지 원어민 보조교사를 모든 중학교에 최소한 1인씩 배치하고 초등, 고등학교에도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1인배치를 적극 권장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원어민 교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5월 현재 원어민이 1명이라도 배치된 학교는 전국적으로 볼 때 초등학교 799개교(전체 초등학교의 14.2%), 중학교 640개교(21.8%), 고등학교 402개교(19.2%)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예산이다. 중학교에 원어민 보조교사 1명씩을 둔다고 해도 학생들의 의사소통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기는 바랄 수 없다. 최소한 한 학교에 2-3명씩이 돼야 약간의 효과라도 바랄 수 있다는 것이 교사들의 얘기다. 또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도 원어민을 최소한 한 사람씩이라도 배치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추가로 투입돼야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원어민 교사들을 반드시 영입해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영어교육에 반드시 원어민 교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내 영어교사의 능력이 우수하면 원어민 교사를 영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2004-2005년 토플 응시생들의 평균점수가 257점이나 되는 핀란드의 경우 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한 명도 없다.
교육부 영어교육혁신팀의 김천홍 팀장은 "핀란드 대사관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학교에는 원어민 교사가 없지만 내국인 영어교사들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더라"면서 "핀란드는 처음부터 우수 교사들을 확보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영어교사의 능력을 높이고 우수교사를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현재는 과도기적으로 원어민 교사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하다"면서 "원어민 교사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지만 자격 있고 수준 있는 원어민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육부의 영어교육 관련 총예산 682억원 중 절반인 340억원이 원어민 보조교사 영입에 지출됐다. 이에 비해 교원 영어연수에는 총예산의 9.26%인 63억원이 쓰였을 뿐이다. 이때문에 원어민 초청 예산을 차라리 기존의 국내 영어교사들의 연수 프로그램에 돌리는 등 국내 교사들의 자질향상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도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영어교사들의 약 70%가 영어와 한국어를 병행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주당 1시간 이상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비율은 20% 내외에 머물고 있다.
교사들의 자질 향상 얘기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3월 영어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272명의 중·고교 영어교사들을 상대로 측정한 토익(TOEIC)점수가 평균 718점이었다. 반면, 같은 해 대기업 신입사원과 12개 공기업 합격자의 토익점수는 각각 778점과 841점이었다.
현재 교실에서 자신있고 편안하게 영어를 가르치고 구사할 수 있는 교사들의 수는 수요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 설사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과연 그 수업을 이해하느냐가 또 문제가 된다. 즉, 수능 영어를 실용 영어 위주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가르치는 교사의 영어도 유창해야 하지만 배우는 학생들도 그것을 이해할 만한 수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S여고의 박모교사는 "선생님이 유창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는 강남권 학교에서도 그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아이들은 15-20%밖에 되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지금 교사들중에서도 영어로 전혀 수업을 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 교사 연수 = 교육부의 의뢰로 지난 5월 전북대 전병만 교수팀이 작성한 '초.중등 영어교육 현황 분석'이라는 보고서는 "우리 학생들의 영어 능력 함양을 위해 원어민 교사들을 초청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내국인 영어교사들에게 집중적인 영어 연수과정을 제공, 궁극적으로 원어민 교사들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효과적인 영어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7만4천463명의 영어 교사들중 영어 관련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은 22.2%인 1만6천330명이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2010년까지 5년 간 모두 2만5천500명의 중등 영어 교사들에게 1-6개월의 중단기 직무 연수를 시키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교육부는 또 6개월 영어 심화연구 대상인원을 연차적으로 확대해 2010년까지 중등 영어 교사의 12%에 해당하는 3천500명에게 심화연수를 시킨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연수 계획은 일선 교사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고교 영어교사는 "공립학교의 경우 임시 강사 채용 등 인력사정이 나은 편이어서 학기중 해외 연수 (약 한 달 정도)가 가능하지만 사립의 경우 학기중에 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직원 연수중 직무연수를 매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학기중에 모두 60시간을 받는 연수가 있는데 선생님들이 모두 가기 싫어한다"면서 "왜냐하면 수업을 모두 오전으로 앞당겨서 몰아서 한 뒤에 오후에 연수기관에 가서 집중 연수를 받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수란 본인이 싫어서 가도 마치고 나면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연수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그러나 학기중에 하는 그런 연수 보다는 방학을 이용해 20일 동안 숙박하면서 집중적으로 받는 연수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의 해외 연수는 가기도 어렵고 기간도 짧다. 현재 국내든 국외든 6개월 이상 연수로는 교원대와 계명대 파견 교육이 있을 뿐이다. 이 연수의 기간은 모두 6개월인데 5개월은 숙박하면서 교원대에서 교육받고 1개월은 해외에 나가서 받는다.
이 연수는 교사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모두 684명이 이 연수의 혜택을 받았을 뿐이다. 계명대에서도 지난해부터 중등교사들만을 상대로 비슷한 연수가 실시되고 있지만 역시 94명만이 연수를 받았다.
전병만 교수팀의 보고서는 현 연수제도가 ▲ 학기중 연수의 경우 과중한 수업 업무 부담으로 신청자가 감소하고 있고 ▲ 국외연수 희망 교사가 많지만 예산부족으로 소수만 혜택을 받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연수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 방학중 연수를 강화하고 ▲ 국외연수에 많은 교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 3개월 이상의 국외 심화연수에 참여할 경우 휴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