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건강은 무슨 건강,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닙니까.”
- 요즘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내 평생, 소원 하나 있소이다. 우리 겨레의 빼어난 전통정서를 오늘의 가치 질서로 다시 되살리는 일이오. 나는 이것을 ‘노나메기’라 합니다.
두레를 공동 노동이라 한다면, 노나메기는 나누어 먹는다는 뜻이지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노나메기, 나는 이것을 현대의 모순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명제라고 생각합니다.
노나메기를 우리 삶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나는 최근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펴내는데 2년 됐습니다. 또 우리 고유정서의 뿌리인 마실(나들이)할 집을 짓기 위해 지난 9월 강원도 어느 구석에 땅을 장만했습니다. 40년 동안 꿈꾸어왔던 것을 마침내 이룬 셈이죠.”
- 최근 노나메기 마실집을 짓기 위해 ‘벽돌 한 돌 쌓기 운동’을 벌이고 있지요.
“흔히 ‘마실’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뜻풀이 하자면 ‘나들이’ 쯤이 될 수 있을 텐데. 서로 격 없이 얘기 나누며 쉴 수 있는 곳이 ‘마실’입니다. 이런 전통정서를 살리기 위해, 한 2백 평 정도 넓이로 마실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을 못사니까 그 꿈이 깨지더라고. 우리 집에 오는 세배꾼들이 중심돼 지난 9월 강원도 동해 깊은 산골짜기에 산 6정보, 땅 8백 평을 장만했습니다. 주로 노점상·철거민 들이 주머니를 털었고, 이후 지식계 인사와 일반 시민이 가담해 7천만 원을 쌓고 은행 융자 2천만 원을 보태, 내 40년 꿈을 이뤘습니다. 이후 건물을 짓기 위해 ‘벽돌 한 돌 쌓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선 2~3만 돌을 쌓으면 30평정 도는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실이 다 지어지면, 누구나 와서 쉬었으면 좋겠어요.”
- 선생의 거침없는 모습을 봐 오면서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과 지금의 성격이 과연 같을까 하는 것이죠.
“어릴 적 꿈이 축구선수였어요. 당시 나는 몸이 빠르고 축구를 잘했지요. 공이 귀했던 당시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맨발로 돼지오줌보, 솜 등을 맨발로 찼습니다.
열세 살,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 고향에서 이 곳으로 왔습니다. 아버지는 서울 함께 가면 축구선수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일거리가 없었던 아버지 밑에서 나는 거리의 떠돌이가 됐어요. 고작 할 수 있었던 것이 길거리 돌멩이와 깡통을 차는 것이었죠.
한 번은 맨발로 돌멩이를 차다 발가락이 부러진 적도 있습니다. 재주가 있어도 꿈을 이루지 못하는 세상,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됐다, 이 잘못된 세상을 발로 차야겠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재야의 한 늙은이가 됐네요.”
- 선생께서는 현재 이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주 잘못된 세상입니다. 미국의 금융재산이 온 세계를 장악하고 있지요. 이런 탓에 미국 ,유럽 일부 국가와 일본 등을 제외하고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빚지며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더 심합니다. 조선이 왜 멸망했나요. 백 칸짜리 집 때문에 망했어요.
방 30개에 불만 때도 장작이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그 방을 온 가족이 써도 남아요. 남는 방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기생 불러다 놀았어요. 그럼 이 비용을 어디서 조달 했겠어요. 부패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 우리사회의 문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민족성인가요, 아니면 지도자 문제인가요.
“민족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김대중씨가 퇴임 후 3백54평짜리 집을 짓는다고 하더이다. 그럴 필요 뭐 있습니까. ···중략···
그래서 나는 김대중씨를 ‘썩물’로 생각해요. 우리나라 망치는 것은 이런 1백 칸짜리 부패입니다.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노나메기’ 정신입니다.”
- 현재 우리 정치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곳은 없고 다음 선거만을 보고 있습니다. 정치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끔 지하철을 타다보면 답답한 일을 당하곤 합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반가이 인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보고 안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젊은이 둘이 나를 가리키며 하는 말소리가 들립디다. 한 친구가 ‘저거 다 망했나 보다’라고 하니, 옆에 있던 친구는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저게 뭐 가진 거 있어, 원래 없었는데…….’
그 한순간에 백기완이 ‘저게’가 됐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욱 답답한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두고 가진 게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하는 잣대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축으로는 정치 부패의 원인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중심은 국민보다 사회제도에 있어요. 미국의 부자하고 미국의 중산층하고의 차이가 300:1이라고 합니다. 또 미국 시민과 에티오피아 시민과의 차이가 300:1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미국 제일 갑부와 에티오피아 사람의 빈부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요. 부패구조는 세계구조이며,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술 한 병에 5백 만 원 짜리가 있다고 하던데, 소주 먹으면 5~6백 원입니다. 부패의 원인은 네 것 내 것을 법률제도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 그러나 지도자를 선택하는 권리는 국민에게 있지 않습니까?
“국민이 옳게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만들어놓고 선거를 해야 하는데……. 표가 나올 사람만을 언론이 보도하잖아요.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들어주지도 않아요.
그러니 가능성이 없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거짓말을 안하는 사람, 부패가 없는 사람, 백성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표를 줬으면 해요.”
- 정치외적인 측면에서, 인류의 역사 중 가장 극심한 갈등은 종교에서 일어났습니다. 최근 미국과 이슬람권 갈등을 보면 헌팅턴이 얘기한 문명 충돌이 현실화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막심(폭력) 중 가장 심한 것이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잔인무도한 것이 있죠. 바로 관념적 폭력입니다. 그것은 자체가 허무성을 지녔기 때문에 가장 극렬합니다. 종교는 관념적 구조에서 나옵니다. 십자군 전쟁을 보면 기독교만큼 사람을 많이 죽인 종교는 없습니다.
원래 미국 원주민 인구는 2천만 명이었습니다. 지금은 1백2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중 대부분은 알코올· 마약 중독자입니다. 미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인디언을 늑대 같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막 잡아 죽여도 된다고 했지요.
무슨 뜻으로 그렇게 얘길 했겠습니까. 그들은 청교도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달싹(미생물)도 죽이는 것을 저어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 적은 없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있는 놈 없는 놈 갈등을 없애야 한다고 봅니다.”
- 요즘 통일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요새 흔히 얘기하는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에요. 우리 삶 속에 분단이 들어와 있습니다. 통일은 분단 억압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이후 통일이 다가오는 것으로 보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더 분단이 악화됐습니다.
이 정권은 국부를 미국에 팔아먹었습니다. 시장개방 압력에 따라 우량기업 주식의 절반이상을 미국에 팔아먹었어요. 자본은 자기증식 본능이 있지요. 미국의 독점자본이 통일이란 이름으로 한반도를 지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통일은 자주국가의 토대위에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사는 것입니다.”
- 북한이 변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변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이러한 시각을 어떻게 보십니까.
“북쪽이 변화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다양한 반응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에서 북쪽 변화를 보는 언론은 한 곳도 없더군요. 몇해 전 LA 타임스 동경지국장이 나하고 인터뷰를 하자고해요. 머리가 하얀 영감인데 3시간 반 동안 얘기를 했어요.
그 때 그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왜 남한의 반체제 운동은 적극적이지 않나?’ 그 때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 심장을 겨누고 있기 때문에 은밀히 하고 있는 것이지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또 북쪽의 세습체제에 대해서도 묻더군요. 혁명의 계승인지, 세습인지, 살아보지 못해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 한숨을 쉬더군요. 남쪽의 보수반동들이 북 넘어지기를 바라는데, 그들은 8.15 해방직후 평생 독립운동에 여생을 받친 여운형 선생을 집 앞에서 죽였습니다. 장준하 선생도 죽였지요. 요즘 북한 식량지원 얘기를 하는데, 사실 7억 달러면 끝납니다. 10년 동안 매년 7억불 씩 꿔먹어도 70억불밖에 안돼요.”
- 백 선생께서는 오늘의 대학, 대학생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자식과 다름이 없지요. 그런데 요새 대학생들 야단이 났어요. 제일 관심이 먹고 노는 일이에요. 개죽처럼 흔들리면서 살고 있어요. 가랑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거름이 돼 주변의 목숨을 살리는 생을 산다면, 개죽은 이리저리 휘날리다 정처 없이 물에 떨어져 떠다니죠.
나는 사랑하는 우리 대학생들에게 ‘가랑잎이 될지언정 개죽이 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 앞으로 어떤 일에 전념하며 사실 계획인가요.
“노나메기 운동을 할 겁니다. 그러나 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매한 인품을 지니지도 않아 어디 만원 끌어다 댈 데도 없습니다. 이 선생 같은 분들이 주변의 초중등 동창들에게 노나메기를 알려주십시오.
나는 평생 돈이 지배하는 사회를 사람이 사람을 위한 사회로 만드는 일에 힘써 왔습니다. 돈이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일하는 사회 만들기에 이바지 하고 싶습니다.”
<정리 : 송찬영 기자, 사진 : 한명섭 기자>
- 백기완은 누구인가?
. 1933년 1월 황해도 은율 출생
.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
. 1971년 백범사상연구소장
. 1974년 긴급조치 제1호로 구속
. 1979년 YWCA 위장결혼사건으로 구속
. 1983년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
. 1985년 통일문제연구소장(현)
. 1986년 민요연구회 고문
저서 : '항일민족론'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거듭 깨어나서'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 노릇을 할까' ‘나도 한때 사랑을 해 본 놈 아니오’ '우리겨레 위대한 이야기' '장산곶매 이야기' '이심이 이야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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