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서구의 몇몇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지금도 이곳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대학입학시험으로 이렇게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보도 매체들이 앞 다투듯 극성을 부리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무엇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교육열기에 극심한 몸살을 알아야 하고, 무엇이 이러한 극심한 '교육열병'을 조장 내지는 지속시키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병인을 찾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대한민국정부 수립이후 그 동안 수많은 교육행정가와 교육학자들이 갖가지 처방전을 제시하여 적절한 약도 쓰고 증상이 심한 환부를 수술한다고 가위와 칼도 대어 보았지만 우리 교육의 고질병은 치유되기는커녕 점차 악화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 설 때마다 교육 개혁을 하겠다고 목청을 높여가며 애를 씀에도 불구하고 왜 조금도 나아지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하거나 잘못 짚은 것은 아닐까? 무엇 때문에 불건전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과외가 만연하며, 조기유학이 성행하고 '입시지옥'(?)이 유발되며, 공교육이 부실화되고 지방대학이 피폐해지며, 청년실업률이 위험수위를 넘어 서고 고학력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을까? 무엇이 우리의 교육을 불합리한 대학입시제도라는 올무에 메여 있게 하고, 대학에 자율성 상실이라는 오명을 부여한 채 세계화의 흐름에서 조차 낙오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우리 사회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일까?
국가주의 교육 이데올로기의 탈을 덮어쓴 우리의 대입제도는 유·초·중등교육을 볼모로 붙잡고 학력경주를 벌이며 학생들을 선착순 순위경쟁에 몰아넣고 있으며, 학부모들은 이 경쟁에서 그들 자녀들이 남보다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대학입시에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은’ 학원 수업과 과외에 매달리며 세칭 일류대학 일류학과 입학을 위해 밤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으며, 학부모들은 자녀의 사교육비 조달에 어려움을 당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열성 학부모들은 촌지와 뇌물성 선물마저도 마다하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실로 우리나라에 만연한 학력·학벌주의가 이러한 “과도한 교육열기”의 근원이며 이상적인 대학교육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핵심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학력?학벌주의는 개인의 삶의 기회 선택뿐만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특권을 결정하는 핵심적 가치이자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학벌주의는 '현대판 문중', 혹은 '현대판 카스트'로 인지되면서 새로운 지배계급을 형성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우리 교육의 올바른 활력과 방향 감각을 마비시켜 ‘죽기살기식’의 과잉교육열 현상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의 교육은 학력과 학벌을 태동시키는 산실에 불과하며 대입제도는 학력·학벌주의를 조장하는 주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벌주의를 먼저 타파하지 않고는 어떠한 교육정책의 수립이나 교육개혁도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본다. 학벌주의의 극복 대책 없인 어떠한 사교육비 경감 방안도 혁신적인 대입제도 개선책도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사회체제의 혁신이 선행되지 않는 교육개혁은 속된 말로 ‘도로아미타불’일 뿐이다.
그러므로 학력·학벌주의와 대입제도는 필연이자 악연(惡緣)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연(緣)을 끊는 것이 한국 대학 교육 발전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선결 방안으로 첫째, 학벌주의 타파를 위한 확실한 법제도의 마련과 철저한 집행 및 공공기관과 사기업체에서의 특정 학벌 고용상한제와 지역 안배에 따른 인재할당제를 실시하고 둘째, 공교육 정상화와 창궐하고 있는 불건전한 사교육 근절을 위해 국가주도의 대학입학시험제도를 조속히 폐지함과 동시에 지방자치단체와 고교교사 주도의 가칭 ‘고졸학력자격시험제’를 실시하고 셋째, 교육부가 국립종합대학을 상향평준화 시킨 후 대학행정에서 미련 없이 손을 때고 모든 대학을 지방자치단체나 사립법인에게 맡겨 신입생선발을 포함한 대학의 모든 기능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끝으로 대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학과별 혹은 전공별로 인정제도(Accreditation System)를 도입하여 이를 주기적으로 철저히 실시하고, 특히 사학의 건전한 육성을 위해 대학기관평가를 엄정하게 시행하여 대학의 공공적 책무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