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비해 지적 전통도 일천하고 토대도 취약했던 미국이 20세기 들어 일시에 세계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파시즘을 피해 대거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학문을 부흥시켰던 역사적 사실에도 기인하지만 미국정부가 대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학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학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사실은 미국을 보면 분명해진다. 하버드, MIT, 칼텍 등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오늘날의 미국을 세계최강대국으로 만들어놓은 일등공신이다. 국가발전을 평가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 대학평가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이 세계주요대학 중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는 가를 보면 그 나라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대학경쟁력이 취약한 우리나라는 국가경쟁력도 취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심심찮게 접하는 내외신 언론보도에서 우리나라 주요 대학들의 순위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경쟁력은 국가경제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GNP규모로 볼때 우리경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한국대학의 질이나 위상도 10위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깥 세상은 국제화, 세계화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학계에서는 여전히 서울대폐지론이니 지방대지원책이니, 대학간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이전투구식의 밥그릇 챙기기에 열중인 듯하다.
몇몇 주요대학을 집중육성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집중해야 하는 마당에 특정대학을 비난하고 모든 대학에 골고루 지원해라는 식의 논의는 대학의 질을 결국 하양평준화하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속성이 그대로 배어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는 주요대학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위상에 맞는 세계적 대학을 만들어내는데 국가가 나서야 한다.
미국의 MIT와 칼텍은 서로 비판하기보다는 경쟁의 라이벌로서 상호발전을 꾀하고 있다. 스탠포드대, MIT, 칼텍 등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 미국과학기술과 산업을 주도한다고 해서 미국에서 스탠포드 폐지론, MIT폐지론, 학력차별반대론을 주장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에꼴 폴리테크닉, 에꼴 노르말 쉬뻬리에르, 국립행정학교 등은 최고의 엘리트 학교로 이들 명문학교출신들이 프랑스의 경제계, 관계, 과학기술계를 독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프랑스 국민들은 이들을 프랑스를 지탱하는 두뇌라고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오히려 더 많은 지원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특정학교폐지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직 세계적인 대학 하나 못 만든 상황에서, 우리는 대승적 차원에서 대학의 중요성과 세계적 대학 육성의 필요성을 인식해야만 한다. 한국의 몇몇 대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다면 이는 국가전체가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물론 그 학교 출신에 대한 다소의 특혜는 주어지겠지만, 경쟁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대학지원에서도 원칙적으로 적용해야만 한다. 우수한 재원이 모인 대학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가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