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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간의 일본여행이 준 교훈(1) 허장성세와 저자세
강위석 / 본지 논설위원, 월간 에머지 발행인
여행이 주는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해방감이다. 이 해방감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달라짐에서 오는 것 같다. 생각의 모드도 달라진다. 자기 집 방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모국어 모드라면, 외국의 호텔 로비에 앉아 있으면 외국어 모드로 생각한다.

달리는 열차 속에서는 풍경이 지나가는 것처럼 생각도 흘러 가 버린다. 본 것도 생각한 것도 대부분 금방 잊는다. 창자가 아닌 머리가 쾌변(快便) 중인 것 같이 시원함을 느끼기도 한다. 공자(孔子)가 흘러 가는 물을 보며 ‘가는 자는 이와 같으니라’ 라고 한 것은 여행자의 고단함이 아니라 움직이는 자가 움직이는 것에서 느끼는 표표(漂漂)함을 말했으리라.

나는 지난 6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한일문화교류기금(재단)이 조직한 12명의 일본방문단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본을 여행하였다. 예정된 방문과 행사 일정은 나고야에서 전철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메이지 무라(明治村), 시즈오까현(靜岡縣) 하마나코(濱名湖)의 세계꽃박람회, 도요다시(豊田市)의 도요타자동차 공장, 하코네(箱根)와 후지산(富士山), 한일문화교류기금의 일본측 상대방 격인 일한문화교류기금이 초청한 그 쪽 대표들과의 도쿄 오쿠라 호텔 만찬 환담, 마쯔시다 정경의숙(松下政經義塾), 게이오대학 후지자와 쇼난(慶應大學藤澤湘南) 캠퍼스,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이었다. 이 가운데 맨 먼저 순서인 메이지무라 방문만은 비행기의 나고야 공항 착륙이 태풍 때문에 여러 시간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취소되었다.

이번 방문단의 단장인 이 상우 한림대 총장은 메이지 무라 구경이 태풍이라는 ‘불가항력(不可抗力)’ 탓에 빠지게 된 것을 서운해 하면서 그 때문에 방문 스케듈이 완전히 현대 일본으로 맞춰지고 말았다고 유머스런 토를 달았다. 메이지무라는 명치유신 시절의 건물 67채 등을 비롯한 유물들을 전국에서 모아 1백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옮겨 놓은 박물관 공원으로서 일본의 전후부흥이 끝난 1960년대에 완공 개장되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은 260년 장기 집권을 누리던 도꾸가와 가문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일본 서남 지방 번(藩)의 소수의 하급 무사들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이 쿠데타 세력은 두 가지 명분을 내 걸었다. 하나는 천황(天皇)의 복권(復權)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국민은 천황의 평등한 신민(臣民)이라는 것이었다. 이 명분들은 둘 다 실은 도꾸가와가(家)를 겨눈 비수였으나 시대의 새로운 물결을 잘 탄 것이기도 했다. 특히 두 번째 것, 즉 사민(四民)평등은 일본 국민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한 다음 조선 침략을 실행하였듯이 그로부터 약 300년 후의 메이지 유신 세력도 쿠데타에 성공한 후 조선을 침략하였다. 도쿄대학의 이노구치 다까시(猪口 孝) 교수가 쓴 ‘일본 정치의 특이(特異)와 보편(普遍)’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히데요시(秀吉)는 16세기 후반 조선 다음에 중국 인도 침략을 겨냥하고 있었으나 그 자체는 자기의 힘을 과시하자는 것 뿐이었고 허장성세(虛張聲勢)형 권력의 무모한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같은 책에서 도요도미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도꾸가와는 저자세(低姿勢)를 취함으로써 도요토미가 조선침략 등으로 야기한 난국을 수습하였다고 말한다. 일본은 한 때는 허장성세를, 다른 한 때는 저자세를 오랫동안 그네처럼 반복할 패턴에 처해져 있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풍요를 업고 허장성세 국면에 들어 갔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도 지난 10년간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경기침체에 따른 저자세 기간을 벗어 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4-09-13 오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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