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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헌 칼럼
송백헌의 어원산책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송백헌 칼럼]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송백헌 어원산책] ‘물레’
지금은 거의 사라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기구이지만 옛날에는 각 가정마다 거의 비치하여 놓고 솜이나 털 같은 섬유를 자아내서 실을 만들었던 틀을 가리켜 물레라고 했다.

이 물레의 유래에 대하여는 고려 말 원나라에서 목화(木花) 씨를 처음 우리나라에 몰래 가져온 문익점(文益漸)의 고사(故事)와 관련이 있다는 구전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문익점(1329~1398)은 호를 일신(一身) 또는 삼우당(三憂堂)이라 한 고려조 공민왕(恭愍王) 때의 문신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正言)에 이르렀을 때인 1363년에 사신으로 원(元)나라에 가 덕흥군(德興君) 막하에서 덕흥군을 왕으로 내세우고자 하다가 덕흥군이 패하자, 3년 간의 유폐(幽閉)생활을 당하고 귀국할 때 붓통(筆管) 속에 목화씨를 몰래 가지고 와서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慶尙南道 山淸郡 丹城面 沙月里)에 심고, 그 중 한 낱은 장인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나눠주어 심게 하였다.

그 목화씨가 싹이 터 번식함으로써 우리나라 농촌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목화는 무궁화(無窮花) 과(科)에 속하는 일년초 또는 다년생 목본(木本)으로 처음에 꽃이 피고 열매인 다래가 열렸다가 다시 목화가 피기 때문에 흔히 두 번 꽃이 핀다는 말이 전하고 있다.

이렇게 핀 목화를 따서 ‘씨아’라는 틀로 목화씨를 빼고 그냥 활로 타거나 솜틀에 타서 사용하면 바로 솜이 되고, 이것을 실로 만들어 베를 짜면 질기고 따뜻한 옷감이 되는데 이 옷감을 무명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목화의 씨를 빼는 것이 큰 문제이었으나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來)가 ‘씨아’라는 씨를 빼는 틀을 발명함으로써 쉽게 해결이 되었지만, 다음 그 씨를 뺀 솜으로 실을 만드는 일이 또한 문제이었다. 이에 문래는 다시 새로운 제사법(製絲法)을 고안해 낸 기구가 바로 물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실을 낫는 기구 ‘물레’라는 명칭은 처음으로 ‘문래’라는 사람이 고안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문래’라고 부르다가 뒤에 차츰 발음이 변하여 ‘물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얼마 뒤에 문래의 아들 문영(文榮)이 베를 짜는 틀 즉 ‘베틀’을 고안해 냄으로써 비로소 한자어로 목면(木棉)이라 쓰는 무명 천을 얻게 된 것이다. 따라서 ‘무명’도 베틀을 만든 문영의 이름을 따서 처음에는 ‘문영’이라 부르다가 그 뒤 음이 차차 변하여 ‘무명’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다른 견해도 있다. 즉 무명의 한자어를 목면(木棉)이라 표기하는데 목(木)의중국 근대 음이 mu인 만큼 처음에는 한자어 목면(木棉)의 발음인 '무면’으로 부르다가 뒤에 무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것다.

송백헌 칼럼 | 입력 : 05-06-04 오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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