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내내 대학정책의 최대 이슈는 지방대학발전이었다. 이 문제는 국가균형발전의 맥락 안에서 취급되었고, 일년 내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대학들은 지...
3선 개헌후 다시 영구 독재체제를 굳히려는 박정희를 위해서 유신헌법을 만들어 준 것은 헌법학자 한태헌을 비롯한 교수들이다. 이것은 사람 잡는 지뢰밭에 꽃을 심고 그것을 미화하며 국민을 기만하는 공범자가 되는 행위다.
그런데 진실의 왜곡은 꼭 그렇게 의도적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꽃씨를 날려 보내 와서 지뢰밭이 꽃밭이 되는 수도 있다. 단 이런 경우에도 그곳이 왕년에 지뢰가 많던 격전지라면 그곳이 정말 안전지대요 아름다운 꽃밭인지는 조사 여구가 필요하며 , 안 그러면 그곳은 계속 남을 기만하는 자리로 남는다.
우리의 가까운 현대사가 그렇다. 해방 후에 친일파들이 더욱 득세하고 나라가 쪼개지자 현대사에 대한 연구는 마치 지뢰밭을 피하듯이 잡초가 우거지는 대로 방치되고 여기에 통치자들이 자신들을 미화하며 꽃씨를 뿌려서 진실이 은폐되었다.
이런 경우에 그래도 위장을 걷어내고 진실을 가려내는 것은 대학의 역할이다. 그렇지만 대학은 이런 일을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서울대가 작년 2학기에야 겨우 현대사 전공교수 한명을 채용하게 된 것도 한국의 대학이 그처럼 우리에게 절실한 진실 탐구의 연구기능을 고의적으로 기피해 온 대표적인 예의 하나다.
어떤 대학은 교양과목으로 설강했던 국사과목을 폐강시키기도 했다. 친일파와 통치자들의 은폐된 진실이 자주 들춰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학은 때때로 진실 은폐의 역기능을 지니게 되고, 사람들은 거기서 화려하게 피어난 꽃만 바라보며 밑바닥에 숨겨진 반역의 역사는 모르고 살도록 강요당한다.
그렇지만 역사에 완전 범죄는 거의 있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증인이고 목격자로서 살다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반역자였고 남로당 간부였고 누가 광주의 학살자였고 누가 얼마나 차떼기로 도둑질을 해 먹었는지가 전설처럼 퍼져 나간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역사의 청산 없이 결코 안정될 수 없다. 반역과 범법이 설치고 이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실을 아는 한 누구도 양심과 정의에 자부심을 갖기 어렵고 준법벙신은 사라진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노사분규의 치열성도 단순한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라 도둑으로부터의 박탈이라는 필연적 피해 의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해결이 쉽지 않다. 노사분규를 해결하려면 역사적 청산에 의해서 정의부터 살려야 한다.
그런데 정의의 심판에는 물증이 필수이므로 대학인에 의한 연구실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곳이 확실히 위험한 지뢰지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접근한 학자들도 있다. 그러다가 결국은 지뢰를 밟고 죽는다. 선배교수의 친일을 언급했다가 해직된 서울대 미대교수 김민수씨처럼..
우리의 친일문학 청산도 그렇다. 민족의 얼을 심는다는 국어시간에 학생들은 대표적인 친일파의 글을 배우면서 그를 국민적시인으로 떠 받들게 되어 있고,정부는 그에게 국가최고의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교육부나 문화관광부가 얼이 빠진 것이다.
그런데 이 배후에는 항상 문인집단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 서정주의 경우라면 그 대학교수와 제자로 이어진 사제간의 학벌집단이 진실의 은폐에 작용하고 있다. 누구말대로라면 벌떼처럼 일어나서 친일교수를 비호하며 이것을 갸륵한 의리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승의 것은 결코 능가해서도 안되고 털끝만치도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쯤으로 아는 학풍이 있다. 이래서야 학문의 발전도 역사의 발전도 모두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나? 학문의 연구실에서도 흥분한 잠자리처럼 정이 먼저 판단을 내리게 된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 항문의 영역이고 성역이 아니라 성역 (性域)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