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칼럼/이슈 홈

목록
프린트 스크랩
장세진 칼럼
장세진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장세진 칼럼]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학벌사회는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장세진 인하대 교수/본지 전문위원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서는 학벌사회를 종식시키는 방안으로 국립대학 공동학위제와 수능폐지를 들고 나왔다. 아직 초안일 뿐이라고 하지만,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이 구체화된 계획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에는 이미 기본 방향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학위제란 국립대학 상호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수강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소속대학과 수강대학이 다르거나 복수의 수강대학이 있을 경우, 학위증에 이들 대학을 연명으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대 명의의 졸업장을 받기 위하여 어느 국립대학에나 들어가서 서울대에서의 수강을 신청하면 된다. 이는 일류대와 이류대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기존의 서울대 폐지론처럼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거의 동일한 효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무릎을 쳤을 법도 하다.

그렇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이 아닌지 신중히 살펴 볼 일이다. 어떤 문제의 해결에만 주목하면서, 다른 더큰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대학선택은 특정대학에서의 수강 집중을 초래할 것은 분명하다. 물리적인 제약으로 수강생을 제한할 경우, 국립대학 내의 서열은 더욱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는 원래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의 운영에서는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되, 수강집중 대학의 수용능력 확장을 위하여 추가투자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방국립대학이 위축되는 것은 분명하다. 공동학위제에 적극 찬성하는 지방국립대학은 단기적인 명성분배효과에 주목하여 이점을 간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등록금의 배분, 교직원의 이동권이 치열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고, 혁신위는 이차 혁신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실상 공동모집한 인원을 성적 외의 기준으로 대학별로 배분하는 것이 정치적 타협점이 될 것이다. 이쯤 되면, 공동학위제는 평준화말고는 의의를 찾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국립대학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자. 그런 후에, 이를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고 있을 일류 사립대학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쉬워도 혁신의 열풍은 이쯤에서 멈출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립대학까지 평준화한다는 것은 직장을 어떻게 평준화하느냐하는 더큰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쯤 우리는 국립대학 공동학위제를 되돌아 보게 될 것이다. 좋든싫든 대학과 사회는 이를 힘겹게 수용하고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 아마도 국립대학이 사립대학에 뒤쳐지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함께 거론되는 국립대학의 공익법인화가 추진되면, 그 과정은 더욱 촉진될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학벌이 새로운 학벌로 대체되는 것 말고는 학벌문제는 청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쯤, 혁신위는 자신의 거대한 족적의 성과를 찬탄하고, 부작용과 문제점을 다른 탓으로 넘기고 있지 않을까? 검증가능한 성과 지표를 미리 제시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학벌사회는 대학에 우열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선후배 관계에 따라 특혜 또는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특정대학의 졸업생이 특정 부문에서 능력이 탁월하여 우대를 받는다면, 대학의 교육 때문이든 선발 때문이든, 대학의 순기능에 속한다. 문제는 정부 또는 기업조직 내에서 선후배간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부당한 특혜를 주고, 나아가 크고작은 비리에 동참하는 조직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나 기업에서 공정한 규칙과 투명한 감시와 같이 부패척결을 통해서 해결할 일이지 엉뚱하게 대학에서 창의적인 경쟁을 제한할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든 경쟁은 회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이르든 늦든 경쟁은 어떠한 형태로라도 찾아 오는 것이다. 사회정책이 할 수 있는 일은 경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정당한 기준에 따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것 뿐이다. 오히려 대학에서 건전한 경쟁은 촉진되어야 한다. 물론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망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한 안전망은 대학과 학생들이 다양한 목표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시기하고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양한 학문에, 예술에, 스포츠에, 사회활동에 자신의 목표를 두고 서로 격려하고 자극받으며 함께 발전하는 것, 그러면서도 다양한 가치기준에 대하여 서로 존중하는 것이 교육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장세진 칼럼 | 입력 : 04-04-17 오후 3:21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정말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제 평소의 지론과 일치해서 반갑게 읽었습니다. 2004-05-11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