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도 고등교육예산은 총 1조9,175.1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579.6억원이 증가하였지만(전년도 대비 15.5% 증가), 전체 교육예산 규모 27조9,660억원의 7%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학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의지의 정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정도의 열악한 재정 규모를 가지고 대학간의 경쟁을 통해 재정지원을 차등화하겠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발상에 대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학 스스로의 교육적 역량은 물론이거니와 구조적 역량이 한계에 이른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대한 결과 현재 대학은 취약한 재정구조, 비효율적인 행정체제와 학사운영 등으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 부도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는 지난날 대학교육에 대한 투자 노력없이 대학의 양적 팽창만을 추구했던 정부정책에 부응하여 온상조직(domesticated organization)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성장해 왔던 대학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우리의 고등교육이 이미 일반화,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고(2004년 대학 진학률 81.3%), 지식기반사회형 대학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미흡하였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이제 대학은 대학발전을 위한 논의보다는 대학생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고, 특히 지방대 존폐의 위기 상황은 국가적 난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참여정부는 대학개혁정책의 선두적 의제로 “지방대 육성”을 설정하였고, 그에 따라 2004년도에 향후 5년간 총 1조 4,200억원을 투자하는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NURI)'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정권 임기 3년차에 들어선 지금 대학개혁 관련 참여정부의 최대 현안 문제는 대학구조개혁과 대학경쟁력 강화로 선회하고 있다. 대학구조개혁지원사업을 위해 2005년에는 8백억원을 배정하였지만, ‘06년부터 ’08년까지 매년 3천억원씩 총 9천억원을 투입할 예정에 있고,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계획하고 있는 제2차 BK21(Post BK21) 사업에는 매년 4천억원씩 5년간 총 2조원을,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인력양성사업에는 향후 3년동안 6천500억원을 투입할 계획에 있다.
이렇듯 참여정부의 대학개혁정책은 ’선택과 집중‘, ’균형과 조화‘의 원칙에 근거하여 계획.추진되고
있고, 이러한 개혁의 기본 방향은 시대적 적합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경쟁력은 대학체제의 저변이 탄탄할 때 그 실효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참여정부가 지방대학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방대학 육성과 관련된 사업만이 진행되고 있을 뿐 그 외의 사업에 대해서는 계획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집단간 이해관계의 충돌도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참여정부가 제시하고 논의하고 있는 개혁 정책의 대부분은 새로운 정책 의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무수한 논의 과정을 통해 정책화되었지만 실현하지 못했거나, 이해당사자들간의 이해관계의 충돌로 정책화되지 못한 의제들이다.
우리의 경우 지난 문민정부 이후 지난 10년 동안 12차에 걸친 고등교육 관련 개혁안(세부 85개 추진과제)이 발표된 바 있고, 대학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학개혁 의지에 대해 사회적 불신만이 증폭되고 있을 뿐, 집단간 이해관계의 인식 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른바 지난 문민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시장기능에 의한 교육통제와 교육수요자 주권주의의 확대를 초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과 교육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학교교육의 본질 회복이라는 두 입장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개혁의 방향 설정 단계부터 논쟁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이러한 소모적 논쟁에 대한 원인 제공은 대학개혁을 이끌어가는 정부의 기본 방향성과 추진 의지, 전략의 부재에 있다고 본다. 올바른 대학개혁을 위해서는 교육부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부의 대학구조적 문제점 인식 시급
대학개혁의 출발점은 현재 우리 대학이 안고 있는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우리 대학교육의 부실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대학의 과잉공급과 수요의 감소로 인해 대학교육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 현상이 가중되고 있고, 그에 따라 학생 유치를 위한 과당경쟁과 교육부실 등 대학교육의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
특히 청년 취업난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대학 출신에 대한 차별적 취업 관행은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등 지방대학의 위기 구조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 동시에 고등교육 공급자 정보가 부재한 상태, 이를테면 각 대학별 전공별 성취도나 취업전망 등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언론에 공개되는 ‘학교서열’이 유일한 정보인 현실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막연한’ 과수요 현상과 노동시장에서의 고등교육 시장가치에 대한 평가절하,
최근 교육수준과 산업구조 사이에 나타나는 구조적 불일치 등은 결과적으로 국가경제적 측면에서 자원배분의 비효율성과 비생산성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은 오로지 우수한 인재만을 선발하겠다는 경쟁만을 할뿐이지, 인재 양성과 지식생산이라는 대학교육의 본질적 기능 회복을 위한 대학 자체의 노력은 과연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둘째, 대학시장과 노동시장간의 연계성이 결여되어 있다. 대학교육의 급격한 팽창과 더불어 산업에서는 숙련 또는 지식이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은 그만큼 향상되지 못하였고, 그리고 산업에서의 고용흡수력의 악화로 인해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는 인적자원의 질적인 수급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다.
그에 따라 대졸자들의 전공과 직무의 일치 정도가 1/4정도에 지나지 않고, 특히 학력.학벌 중시 문화라는 비시장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의 구조는 대학과 노동시장간의 비연계성을 촉진시키고 있다. 흔히 기업들의 대학교육 만족도를 통해 대학교육의 수준을 평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특정 학벌 선호라는 사회문화심리적 요인과 더불어 기업의 인력선발방식에 대한 자신감 결여, 인력선발에 대한 합리적 방식 부재, 인력선발의 지나친 효율성 추구 등이 대학과 노동시장간의 간극을 더욱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교육당국의 행정 규제 및 지나친 관여로 인해 여전히 대학은 독자적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내부적으로도 의사결정구조의 비효율적인 문제 등으로 대학혁신을 위한 대학의 내재적 역량도 한계가 있다. 재단이사회나 총장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 행정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국립대학인 경우에는 총장과 교수회와의 갈등, 방만한 행정체제 등으로 대학교육의 생산성은 기대 이하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아울러 국공립, 사립대학간 설립 주체 및 철학, 재정 구조 등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학과 및 교육과정 운영 등이 대동소이하여 대학간의 정체성이 모호한 상황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의 대학은 대학간의 기능 분화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대학과 노동시장간의 연계가 신축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이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경영구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교육과 연구의 국제 경쟁력이 뒤떨어져 있다. 특히 학벌중심의 사회 구조, 서열화된 대학구조가 교육경쟁을 심화시키고 공교육을 왜곡시키고 있어 대학교육의 체질을 근원적으로 개선하려는 대학 스스로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
현실적 정책 선택과 추진 전략의 부재
현재 대학교육현장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정책의 부재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문제는 현장에 적합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 선택(policy choice)에 대한 판단 부재와 추진전략의 부재에 근본 원인이 있다. 현실적으로 정책결정과정에서 모든 교육이해관계자들을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문제점과 원인 진단,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한 가치판단과 접근이 입장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정책결정과정은 이해당사자들간의 힘의 논리나 정치적 관계에 의해 지배받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교육정책이나 교육개혁이 교육인적자원부의 사업이 아니고 국가적 사업임을 명심한다면,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교육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결정된 정책에 대해서는 강력히 추진될 수 있는 정부의 추진체제와 추진의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참여정부의 대학개혁 추진체제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지난 정부를 돌이켜보면, 문민정부의 정부의 경우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는 정권의 실세들이 참여하였고, 청와대가 직접 관여함으로 인해 교육개혁위원회의 위상이 강하였으며, 교육개혁위원회는 정책의제 설정을, 교육부는 정책의 형성과 집행을 주도하는 정책과정의 업무분담이 분명하였다.
반면에, 국민의 정부의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정책 실천전략 마련 중심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와 인적자원정책의 계획 수립기능을 주도하는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는 전 정부에 비해 초기 힘있는 장관의 등장과 함께 교육부의 정책기획 및 집행능력이 크게 제고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 위상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에 따라 교육부가 정책추진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고, 이전과 같이 교육부와 자문기구 간의 정책과정상의 업무분담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교육부와 자문기구 간의 정책 조율을 위해 청와대에 교육문화수석의 자리를 마련하였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는 얻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참여정부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는 탄생 초기부터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의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지난 정권에 비해 오히려 퇴보된 위치에 처해 있다고 판단된다.
대통령자문기구와 교육부와의 정책업무분담이 적절하게 분담되지 않고, 교육부의 위상 강화에 따른 독주가 계속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교육부와 대통령 자문기구와의 협조관계의 불명료성, 청와대의 조율 장치 미비 등은 대학개혁정책의 추진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내적인 요인으로서는 교육부내 인사체제로 인한 정책담당자의 작은 교체, 그에 따른 정책의 일관성과 책무성 결여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 보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교육부가 독자적으로 대학개혁을 추진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대학재정이 열악하고 안정적 확보 장치가 미흡한 상황에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대학개혁정책의 추진은 불가능하다. 교육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각종 대학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이 기획예산처나 재정경제부와의 협의․조정되는 과정에서 사업의 성격이나 규모가 왜곡되는 등 안정적 재원없이 교육인적자원부가 독립적으로 일관된 대학정책을 추진하기란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체제 기초 구축과 개혁이 선과제
이제 대학교육이 일반화,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고, 동시에 지식기반사회에 미래의 핵심적인 사회적 기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대학교육의 체질을 근원적으로 개선하여 대학체제의 기초(fundamental)를 구축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대학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예측, 측정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한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역할과 함께 새로운 지식분야를 창출시키는 이른바, 지식생산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개혁은 현재 안고 있는 심각한 대학현안문제를 해결하는 “소극적 대학개혁(혹은 처방적 개혁)”은 물론,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교육방식과 구조의 필요성에 의해 진행되는 “적극적 대학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대학교육의 대혁신은 교육부의 틀 또는 교육계의 시각에 국한된 한계를 벗어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상호 관계 속에서 모색되어야 하고 그 작업 과정은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개혁은 국가, 대학, 사회가 상호 연계되는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학개혁을 위한 국가의 역할은 대학이 자율 역량을 가지고 내부 혁신을 추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방법들을 개발하여 제공해 주는 행․재정 및 정보지원체제로서 역할 정립이 요구된다. 이에 현안문제인 대학 구조개혁정책은 단순한 down-sizing strategy가 아닌 지역 연계성, 대학간 보완성, 시너지 효과 등의 3가지 기준을 토대로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수도권과 지방대”, “국내대학과 외국대학”간의 기능과 역할 재조정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는 대학개혁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구촌이 좁아짐에 따라 세계 대학간 단순 학술 교류 정도를 벗어나 세계의 학문과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세계의 대학과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국가는 향후 21세기를 주도해 나가는 동북아 중심 국가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동북아 지역의 대학교육체제를 선도할 수 있는 “주도적 대학개혁 패러다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에 국내외 대학간의 교육.연구 연계를 위해 대학교육과정의 국제적 통용성 확보는 물론, 학위와 자격의 국제사회에서의 공인을 유도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아시아권 고등교육체제 통합” 전략을 모색하여 추진하는 자신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편 대학 스스로도 교육과 연구력 강화를 위한 내재적 혁신 역량을 강화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대학지배구조의 선진화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아울러 대학간 상호 경쟁 및 협력체제의 구현을 위한 역할과 기능 분할의 재조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립대학은 국책대학으로서 자치기관체제로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역할면에 있어서도 장기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기초 순수 학문 분야와 막대한 재정적 소요가 요구되는 국가 전략 분야를 담당하여야 한다. 또한, 국립대학은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는 국가 핵심기관으로서 지방의 고등교육기회 확충과 지역발전,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 등에 기여하는 사회적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
반면 사립대학은 사전적 규제의 최소화와 사후적 평가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자율성과 책무성 확보가 대전제가 되어야 하고, 역할면에 있어서도 시장경쟁원리에 의해 비교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분야를 자율적으로 담당하는 방향으로 대학혁신을 꾀하여 한다.
마지막으로 대학개혁을 위한 사회의 역할은 대학시장과 노동시장과의 연계체제 구축, 혁신형 산학협동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요망된다. 동시에 특정 학벌 선호라는 사회문화심리적 요인을 제거하고, 이제는 기업의 인력선발방식에 대한 자신감과 선발방식의 합리성을 확보하여 대학시장과 노동시장간의 생산적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이제 대학의 양적 팽창 정책은 제고하고, 지금이야말로 대학교육의 체질을 근원적으로 개선할 때이다. 대학체제의 기초(fundamental) 구축과 경쟁력 확보가 대학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국가 주도적 개혁시대는 지났다. 대학개혁은 대학 구성원의 헌신과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교육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개혁은 국가, 사회, 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입체적 접근을 통해 장기적.점진적.자율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