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홈 > 뉴스 > 칼럼/이슈 홈

목록
프린트 스크랩
송백헌 칼럼
송백헌의 어원산책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송백헌 칼럼]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송백헌의 어원산책] '굴비'
소금에 조금 절여서 통째로 말린 조기 즉 건석어(乾石魚)를 일컬어 굴비라고 한다.

이 굴비는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서 생산되는 것이 가장 명품으로 꼽히는데, 그것은 그 법성포 칠산 앞바다에서 제철에 잡히는 조기가 가장 우수한 생선인데다가 그 조기를 말리는 해풍과 일조량 등 기상조건이 알맞기 때문에 예로부터 법성포의 굴비가 나라의 진상품으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말린 소금에 조금 절여서 말린 조기를 굴비라고 부르게 된 것은 고려 인종 때로 소급된다.

고려 인종(仁宗) 때의 척신(戚臣)으로 이자겸(李資兼 ?-1126)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둘째 딸을 16대 예종(睿宗)의 비(妃)로 보내고서 익성공신(翼聖功臣)이 되고난 뒤 다시 동덕추성좌리공신 소성군개국백(同德推誠佐理功臣 邵城郡開國伯)이 되었다.

예종이 죽자 외손자인 태자(太子) 인종(仁宗)을 옹립하여 권세(權勢)를 잡고서는 셋째와 넷째 딸을 인종(仁宗)에게 바쳤다. 이렇게 그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자, 자기의 일파를 요직(要職)에 기용(起用)하고 대권(大權)을 잡아 국왕(國王) 이상의 권세와 부귀를 누리던 중 『十八子(李)의 성(姓)을 가진 이가 임금이 되리라』는 참위설(讖緯說)을 믿어 왕위의 찬탈(簒奪)까지 하려 들자 이 기미를 알아챈 왕 인종(仁宗)은 김찬(김金粲), 안보린(安甫麟) 등과 거사(擧事)하여 이자겸의 일당을 제거하려다가 이자겸파인 척준경(拓俊京)의 반격으로 실패하였다.

이자겸은 바로 왕을 자기 집으로 옮겨 모시고 독살까지 하려들며 전횡(專橫)하였다. 그 뒤 이자겸의 인척(姻戚)인 척준경은 이자겸과 반목(反目)이 생기면서 전날의 과오를 뉘우쳐 왕의 밀지(密旨)를 받들고 김향(金珦), 이공수(李公壽)와 더불어 거사(擧事)하여 이자겸과 그의 처자(妻子)를 잡아 영광(靈光) 땅 법성포로 귀양을 보내고 잔당(殘黨)들도 멀리 귀양을 보냈으며 자겸의 소생 왕비(王妃)마저 폐위(廢位)시켰다.

이자겸 역시 영광의 유배지에서 죽고 말았다.

이자겸이 이곳 법성포에 유배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지역의 특산품인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를 먹게 되고, 그 말린 조기 맛에 빠진 그는 법성포의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최상의 조기를 약간의 소금에 절여서 말린 뒤 나라에 진상하였다.

그는 이 건어물(乾魚物)을 나라에 올리면서 이는 결코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아부가 아니며, 또한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행위가 아니라는 의미로 진상하는 건어물의 이름을 비굴하지 않다는 뜻의

“굴비(屈非)”라고 이름 붙여 보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이 건어물의 이름이 굴비가 되었다고 전한다.

한편 이 굴비와 관련이 깊은 이곳 영광 땅의 법성포는 백제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地名)이다. 이곳 포구(浦口)의 한자지명(漢子地名)인 “법성포(法聖浦)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듯이 법성포는 인도(印度) 불법(佛法)의 성인(聖人) 즉 법성(法聖)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불법(不法)을 백제(百濟)에 전하기 위하여 이 포구(浦口)에 이르렀기 때문에 “법성이 도착한 포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지하다시피 인도의 고승(高僧)으로 법성(法聖)이라 칭해지는 마라난타는 이미 중국의 진(晉)나라를 거쳐 백제 침류왕 원년인 384년에 배로 이곳 포구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이곳과 지척의 거리에 있는 영광군 불갑면(靈光郡佛甲面)에 자리한 불갑사(佛甲寺)에 자리를 잡고 백제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인물이다.

송백헌 칼럼 | 입력 : 05-05-14 오후 1:02
ⓒ 한국대학신문(http://un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목록
프린트 스크랩
이 름 내 용 비밀번호

1

최신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