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김우종 주필이 역사학자인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를 만나 분단과 식민 청산, 교과서 왜곡, 역사교육 등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역사의 힘’을 믿으며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조동걸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의 좌표를 설정해 본다.
김우종 : 선생께서는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밟아온 길과 미래의 방향을 누구보다도 분명히 지켜봐 오신 셈입니다. 그런데 해방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상황을 보면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다시 생깁니다.
조동걸 : 역사가 평이하게 발전하는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엔 많은 시련과 고통, 그걸 뛰어넘으려는 계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렇게 지금의 역사를 볼 때 어려움은 아직 많지만 해방이후에 비해 그래도 발전한 것으로 봅니다. 저는 역사를 인간주의 관점에서 봅니다. ‘인간주의화 되느냐’ 하는 기준에서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죠. 일단 분단문제는 논외로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 남한만의 역사를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해방 당시와 비교해 성숙한 게 아니겠어요. 예를 들면 문맹률이 해방 후엔 7,80%에 달했지만 지금은 0%에 가깝습니다. 물론 무슨 힘으로 그렇게 됐느냐고 하면 논란의 소지도 있겠지만 일단 결과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김우종 : 분단의 문제를 논외로 했을 때 그렇다고 말씀하셨는데 민족의 역사라는 측면에서는 반쪽의 발전이란 뜻인가요.
조동걸: 저는 해방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현대사로 봅니다. 45년에서 60년까지를 ‘혼돈기’로, 60년에서 93년까지를 ‘민주화운동기’로, 그리고 93년에서 오늘날까지를 ‘민주주의 개혁기’로 구분된다고 봅니다. 혼돈기에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면서 거기에 편승해 남과 북엔 각각 미국과 소련의 소위 ‘앞잡이’들이 집권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 남북에서 집권한 사람들의 이념이라는 것이 ‘과보수’와 ‘과진보’였어요. 다시 말하면 과보수는 미국의 필요와 결부되어 남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내세우는 과진보는 소련의 필요에 맞아서 북에서 집권한 것이지요. 그래서 사상계가 혼란스러웠어요. 예를 들면 백범 김구 선생같은 건전한 보수나 건전한 진보까지 다 회색분자로 몰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시를 ‘혼돈기’라 명명한 것이지요. 그러한 과보수, 과진보 상태가 미국과 소련에 연결되어 발발한 게 6 .25전쟁입니다. 남침, 북침 따지기 전에 전쟁발발의 조건들이 남북 모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우종 : 그런데 6.25전쟁은 남북만이 서로 일으켰다기보다는 강대국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우리가 희생당한 측면이 크지 않습니까.
조동걸 : 그런 부분도 크지요. 6.25전쟁이 난지 십년이 지나도 극단적 사상을 가진 정권이 계속되다 보니 남북이 둘 다 독재정권이 됐습니다. 남북이 똑같이 미국과 소련을 업고, 미국과 소련도 그들을 필요로 한 것이죠. 그러한 분단독재사상의 혼돈상황을 반성하면서 ‘민주화와 통일’을 민족의 숙제로 제창하고 일어난 것이 4.19혁명입니다. 물론 혁명을 뒤엎고 민주화의 반동으로 군사정권이 또 들어섰지만 그런 상황에도 계속 민주화 운동이 수십 년간 이어졌고, 한계는 있지만 결국 93년에 민간정권이 들어선 것이죠.
김우종 : 하지만 해방 후 우리 역사적 상황을 봤을 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분단문제인데 통일의 길이 요원하다면 발전된 건 없다고 봐야 하나요.
조동걸 : 그래도 당시에 비하면 발전됐다고 봐야죠. 해방이후 냉전분위기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입니다. 6․25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지만 이전부터 옹진반도에서 싸우고 또 국제적으로도 냉전체제가 공고했습니다. 지금이야 ‘민족’을 이야기 하고 ‘중도논리’를 내세우기라도 하지, 그 때는 민족이란 말만 써도 ‘빨갱이’나 ‘반동’으로 몰렸죠. 남에선 빨갱이, 북에선 반동이라고 한거죠. 아주 극단적으로요.
김우종 : 그래도 아직 발전이 더디고 장애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이 근본적인 장애물이라고 보시나요.
조동걸 : 일단 우리 전통시대의 유산 중에는 긍정적인 면, 장애가 된 면이 둘 다 있습니다. 하지만 주된 것은 식민지 유산, 또 군사문화의 유산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분단’입니다. 이는 남과 북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분단이 있는 한 선진화는 불가능해요.
김우종 : 독일의 경우 동독과 서독이 우리처럼 극심한 대결구도 없이 통일을 이뤘는데, 우리의 경우 식민지 시대 유산이나 군사문화유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보시나요.
조동걸 : 6.25전쟁을 치루면서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서로를 원수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 큰 이유죠. 독일과 비교해 봤을 때 우리가 6․25전쟁이라는 역사를 가진 것이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데 이러한 분단도 역사구조에서 보면 식민지 유산이에요. 우리가 통일의 당위성을 여러 각도로 얘기할 수 있지만 일단 통일이 식민문화를 청산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이기에 더욱 절박한 것입니다.
김우종 : 통일 다음으로 식민지시대의 유산으로 우리가 청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조동걸 : 북은 차치하고, 일단 남한은 식민문화를 극복하는 것, 즉 식민지 당시의 의식이나 문화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친일파 숙청이란 문제를 봅시다. 지금은 친일파가 뭐 있습니까. 후손만 있지. 그런데 그걸로 말미암아 남아있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문제입니다. 그것이 지금 일본우파와 연결되어 일본의 패권주의적인 성향이 우리를 덮쳐오는 것입니다.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주변국들이 전후 독일이 민주화가 되도록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 전 상태를 어떻게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우종 : 우리가 식민지 청산을 위해 그동안 잘못된 걸 정리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도 그러지 못한 게 아닌가요.
조동걸 : 맞습니다. 식민지시기를 오히려 변론하는 정권들, 그들이 현대사를 끌고 나가면서 몇 겹의 혼돈이 이어지는 상황이 왔죠. 그것에 우리가 민주화운동으로 저항하면서 현대사를 이끌어 온 것입니다. 그래도 5,60년대에 비하면 의식이나마 많이 발전된 걸 느낍니다.
해방이후 우리의 역사는 사실 민주화 운동의 역사입니다. 독립운동도 인류사적으로는 민주주의 쟁취운동이거든요. 민족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독립운동’을 한 것인데, ‘민족의 평등’이란 의미를 돌이켜보면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이 되고 그것이 ‘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독립운동이 일본 식민통치자에 대해 저항하는 힘의 관계, 또 이승만 독재정권과 이후 군사정권 때 이에 저항하는 힘의 관계, 이런 것을 고려할 때 오늘날 이 정도의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 이뤄낸 민주주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본에 민주주의가 있다면 그건 명치유신에 의해 이뤄진 것, 맥아더에 의해 이뤄진 것, 즉 ‘위로부터 아래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정권교체가 아주 요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독립운동도 아래로부터 시작하고 민주화운동도 아래서부터 이뤄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가져온 것이기도 합니다. 또 앞으로 우리가 더 발전한다고 전망하는 이유도 바로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김우종 : ‘아래로부터 민주주의’에 부족하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조동걸 : 그래요. 지도자의 역량만 더 따랐더라면 더 값지고, 아름답고, 보람찬 것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우리들의 지난 백년역사를 보더라도 지도자의 역량이 아래로부터 이뤄놓은 민중의 역량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한계가 역사를 하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지고 그것이 현재에도 질곡이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 과거의 민주화 지도자, 쉽게 양 김씨를 예로 들어보죠. ‘정신과 의사가 정신병자를 치료하다 정신병자가 되어 버린다’는 얘기가 있듯이 이 사람들이 유신과 싸우다가 유신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만들다 보니까 그들 스스로 유신과 닮아가는 착각과 오류가 있지 않았냐는 거죠. 또 민주화운동 진영이 유신체제가 지역감정을 조장했다고 하지만 민주화 운동도 필요악으로서 지역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었거든요. YS는 부마사태를 통해 DJ는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졌을 때 그랬구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이를 솔직히 시인하고 새로운 세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역사의 전환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김우종 : 하지만 우리가 지도자를 누구로 선택하느냐 하는 것도 우리의 밑으로부터의 자각에 의해 형성될 수 있는 문제일 텐데요. 그렇게 볼 때 가령 ‘시민운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일전에 ‘총선연대’가 일부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인 적도 있는데요.
조동걸 : 시민운동에 상당한 기대를 겁니다. 시민운동의 연원을 ‘독립협회’로 보면 그 역사가 백년이 넘습니다. 시민운동을 국가 운영 속에 구조화시키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더 큰 발전을 위해서라도 시민운동은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벼슬자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이익획득을 위한 활동이 되어선 안 됩니다. 또 대중성을 중시해야 합니다. 그런 것만 주의해 나가면 시민운동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몫이 더욱 의미있게 될 것 같습니다.
김우종 : 역사교과서 문제인데요, 선생께서 한국측 위원장이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습니까.
조동걸 : 연구위원회는 교과서를 직접 다루는 곳이 아니라 교과서가 문제되는 학술적인 기초, 학문적인 이유를 찾아 양국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결과가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우리와 일본 역사계가 공동의 광장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죠.
김우종 : 일본 역사가 왜곡된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조동걸 : 사실 부끄러운 문제입니다. 우리도 문제가 많지요. 우선 국정교과서라는 게 잘못입니다. 교과서는 가르치기 위한 건데 국정으로 한정하는 것은 문제죠. 검인정으로 하는 것도 문제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교사가 마음대로 교재를 채택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교과서를 만들고 국정교과서를 정권홍보물처럼 취급되게 만드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과거 우리 역사 교과서를 보면 들어서는 정권마다 아전인수식으로 역사적 평가를 내리곤 했습니다. 옛날 전제주의시대에도 무슨 임금, 무슨 임금 식으로 나누어서 역사를 기술하지지 않았는데 민주주의 시대에 그런 식으로 서술하는 건 큰 문제죠. 대통령 중심으로 그렇게 기술되니까 대통령이 교만해 지는 거 아니겠어요.
일본과의 교과서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건 아닙니다. 단지 지금껏 없었던 한일 양국의 학자가 공동으로 문제되는 걸 토론하고 같이 논문을 내는 과정을 거쳐 앞으로 점점 더 좋아져 마지막에 가선 공동의 교과서를 만들면 좋겠죠.
김우종 : 우리 자신들이 친일의 과오를 청산하지 않고 일본 쪽에만 너희들 교과서를 잘 만들라고 주장하는 것도 큰 모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동걸 : 그렇습니다. 체면이 말이 아니죠. 설득력도 없고. 양국의 극우우파의 논리가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양국 다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니까 관련 당사자들이 겸손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나오니 문제가 있는 것이죠.
김우종 : 우리 현실자체가 그렇게 왜곡된 부분이 많으니까 결국 우리가 우리역사를 알고 잘 가르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대학의 역사연구나 역사교육에 대해 당부할 말씀은 없으신지요.
조동걸 : 역사학은 과거에 그 생활을 통해서 내일의 삶의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고, 그래서 고대사부터 내려오면서 근현대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대학의 강의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선 역사학자와 스승들이 역사연구와 교육에 대한 이해를 갖고 함께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친일파청산 문제를 잠깐 얘기했지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가령 일제시대에 농부가 일제에 협조했다면 먹고 살기 위해 그랬다손 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래선 안 될 사람들이 오히려 반문을 합니다. 가령 육당 최남선이 민족에게 기여한 바도 크고 일생 중에 일본에 조금 협조한 것일 뿐 “협조만큼 공도 크지 않은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개인의 이름도 사회에서 사용하면 사회적이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 사람이 민족을 위해 기여해서 사회화된 ‘육당’이란 이름이 생기면 그 육당이란 이름은 단순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이름이고 그 이름을 사용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춘원 이광수’나 ‘인촌 김성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면 칼잡이가 칼을 자기소유라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인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특히 가까운 근현대 문제에 있어선 더욱 그렇습니다. 일전에 교과서 논란 때 현 정부 관련 문제는 사실만 기록하고 다른 건 빼야 한다는 주장처럼 ‘현재를 평가할 순 없다’고 말하기도 하구요. 당시 교육부총리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를 얘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얘기하느냐의 문제를 지적해야죠. 그런 건 역사에 대한 몰이해예요. 역사는 공부해서 오늘까지 와서 내일 무엇을 할지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연구에도 교육에도 가장 중요합니다.
김우종 : 우리의 현재 좌표와 미래의 방향을 알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근거인 근현대사를 더욱 잘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조동걸 : 그렇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은 미래학의 의미도 담아야 합니다. 근현대사 교육문제가 왜곡된 것도 사실 일제시대 유산입니다. 구한말의 역사교과서를 봐도 오늘까지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일제 때는 현대사연구를 차단시켰거든요. 식민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거였죠. 그때 경성제대 조선사연구자에게 현대사연구를 시키면 식민지 비판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모면하려고 ‘역사라는 건 한 세대가 지나야 된다’ 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게 경성제대 출신 학자들이 이야기하던 것 아닙니까. 오히려 동경대 일본출신자들은 그런 걸 앞장서서 얘기하거나 동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식민지시기에 현대사를 못하게 했어요. 그것이 오랫동안 내려와서 우리가 현대사를 늦게 시작한 것입니다.
김우종 : 오랜 시간 대화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조동걸 교수는 누구인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연구의 태두인 조동걸 교수는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있던 우리 근대사를 치밀하게 연구해 되살려 놓은 역사학자다.
대학 졸업후 고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우리 근대사를 가르칠 만한 마땅한 책이 없어 고민하던 조 교수는 65년 춘천교대 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지금까지 한국 근대사 연구에 열정을 쏟고 있다.
조 교수는 3·1운동부터 임시정부, 독립군전투, 의열투쟁 등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집대성했으며 ‘일제하 한국농민운동사’, ‘한국민족주의의 성립과 독립운동사연구’, ‘한말의병 전쟁’, ‘한국근대사의 이해와 논리’, ‘현대한국사학사’ 등 근현대사 관련 저작을 내놓았다.
지난해 칠순을 맞아 후학들의 논문 봉헌을 마다하고 자신의 학문적 자취를 스스로 정리한 역사평론집 ‘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와 논문집 ‘한국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을 펴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과 초대 한국국학진흥원장, 한국사학사학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국민훈장 동백장, 성곡학술문화상, 의암대상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97년 국민대에서 정년퇴임한 후에도 왕성한 연구 활동과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는 조 교수는 현재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측 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