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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식 칼럼
손광식 칼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향신문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문화일보 주필, 전무이사  /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현재) 상지컨경영설팅(주) 회장,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고문

* 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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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관료(공저), 1979  / 거탑의 내막(공저), 1983 /  한국의 이너서클, 2002 

[손광식 칼럼] 상지경영 컨설팅 회장
[대학논단]네오 내셔널리즘의 깃발
묘한 국가주의의 광기
세계 재편의 서곡인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연초 의회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 새로운 잣대로 다른 나라들을 평가하고 '돼 먹지 않은 나라들'은 손을 보아 주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 고상한 정치 이념이야 어느 나란들 반대하겠는가. '우리 편이면' 군사독재도 지원하던 미국이 어떻게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었을까.

하긴 이라크 공격 이후 세계 여론이 시큰쿤둥 하고 뒷 공론들은 마치 로마제국 처럼 '미국의 천년'이라는 로드 맵을 만들려느게 아나냐고 쑥덕였다. 세계의 흐름이 그렇다손 치더라도 드러내놓고 물리적 수단을 발동하는 미국을 곱게 보아줄 리가 없다.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 쯤은 읽어낼 수 있지만 왜 이런 평가의 잣대를 들고 나왔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기준이 애매할 수도 있는 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다. 어떤 독재국가도 자유는 몰라도 민주의 깃발은 흔들어 댄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자유에 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고 스스로 그 한계가 있다. 추상적 의미로야 고상한 것이지만 절제되지 않은 자유는 폭려과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자연 이 새로운 잣대는 그 세부적 내용이 바로 핵심이 된다. 미국은 그 규정을 만들어 내 가지고 세계의 심판관이 된다는 것이다. 하기야 폭력과 테러로 얼룩지고 대량살상 무기로 세게 국가의 골치를 썩히는 깡패국가들이 있는 현실이고 보면 이런 확고한 기준이 필요할 듯도 싶다.

하지만 이 고상한 가치가 '미국식 해석'에 따르게 될 것이란 데는 무엇인가 걸리는 대목이 있다. 자의대로 답안을 만들고 각 나라를 채점한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만 왜 이 추상적 가치를 강조하고 아왔을까. 이 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부시-라이스의 네오 콘(신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분명 국가주의의 흐름이 숨어있다고 보야야 할 대목이다.

미국적 가치와 세계적 가치가 일치하는 것, 그러면서도 미국의 경쟁력과 역사가 숨어있는 것, 그것을 찾아 낸 것이다. '메이드 인 U.S.A'의 상업문화와 탱크와 전투기의 무력으로 세계적 패권을 추구하는 시대가 변환되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절대적 지위의 상품 패권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다, 전투기와 탱크의 무력 패권은 어떤 나라도 따라갈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정당성과 횡포를 놓고 말들이 많다. 완전한 경쟁력에 결함이 생긴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하자면 어떤 국가 보다도 미국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있고 미국의 역사가 녹아있는 '정치적 무기'이다. 불과 2백년이 좀 넘은 역사이지만 이 두가지 가치는 미국의 헌법이 제정된 이래 다른 어떤 나라보다 그 실천적 실험을 많이 해 왔다.

법률이고 시스템이고 매카니즘이고 국민 인식이고 따를 나라가 없다. 이쯤 생각이 이르면 저 넘어에서 신기루 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다. 성조기다. 2차대전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은 유황도에 상륙한 미국이 밀어 세우고 있는 성조기였다. 이번에는 자유의 여신 상이 성조기를 높이 들어올리게 될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등장이다.

네오 내셔널리즘의 깃발은 천안문 광장에서도 나부낀다. 중국은 반 분열국가법을 만들었다. 대만문제가 숨어있지만 '우리 일은 우리가 우리 식으로 해결한다'는 결의다. '독립적'이라는 가치체계를 통해 보면 그 정당성에 시비를 걸 것이 못 되겠지만 '패권의 발톱'이 이미 들어나 있다. 동북공정에서 중국은 고구려는 '우리 땅'이라고 역사책을 들고 나왔다. 뭔가 흐름이 짚힌다.

한국의 동해 바다에서 때아닌 일장기가 떠오르고 있다. 일본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지방의회 조례를 앞세워 침을 발라 놓고 있다. 정부는 한 발짝 물러나 있는 척 하지만 방식 자체도 겉과 속 다른 '일본 식'이다. 이미 아이들 가르치는 교과서는 국가주의 역사관으로 성형수술을 시켜놓았다는 보도들이다.

한국에서는 '역사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매몰된 진실을 밝혀 내고 국가정통성을 다시 세우자는 그 가치에 누가 동의하지 않을 건가. 그 넘어에서 휘날리는 건 태극기가 아니다. 다음 지배권력을 만들어 내고 유지시키는 깃발이다. 역사 그리고 국가주의의 결합은 묘한 뉘앙스를 깔아가며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글로벌리즘이 인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오는날 이 네오 내셔널리즘의 정체는 무엇일까.

월드컵에서 일어난 태극기의 물결이 자극한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나치 광장이나 평양광장의 국가주의의 광기가 살아난다고는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세계는 지구촌이 되어있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인지 모른다. 상아탑의 학도들이 탐구해할 몫이 엄청 큰 과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손광식 칼럼 | 입력 : 05-03-21 오후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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