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국가적 자존심에 위안이 되는 것은 과학자들이 연구 성과를 과장하거나 조장하는 사례가 외국에도 적지 않다는 해외 언론의 보도를 접할 때이다. 황 교수의 연구 성과 조작에 의문을 제기하고 파헤친 사람들이 국내의 과학자와 언론인들이었다는 점도 다행이다. 만약 외국과학자나 외국 언론이 먼저 황 교수 연구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면? 한국인들의 반응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제는 ‘제2의 황우석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하는 시점이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당사자이며 책임자인 황 교수에게 있겠지만, 그의 학문적 사기행각을 가능케 하고 조장한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이 한국사회에 존재한다. 그것들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제거할 때 한국사회의 국제적 신뢰도와 자존심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요인은 정부에 있다. 이번 사태는 학문적 연구와 정치적 목적이 부합되어 생긴 전형적인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지지율이 급락한 노무현 정부는 황 교수를 첨단과학을 통한 경제성장의 상징물로 이용했다. 연구비 지원뿐만 아니라 경호원까지 제공할 정도로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감히 누구도 비판하고 도전하기 힘든 거물과학자로 황 교수를 만들어 놓았다.
두번째 요인은 언론에 있다. 한국 언론의 속성을 꿰뚫고 있던 황 교수는 스타와 영웅을 갈구하고, 사실 확인 보다는 받아쓰기에 급급한 언론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연고를 중시하는 언론계에 두터운 인맥도 형성했다. 그는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특종보도 이후에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을 조종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인터넷 공간조차도 교묘하고 치밀하게 관리하면서 똑똑하다는 한국의 네티즌들을 속여 넘겼다. 결국 그도 진실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언론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그에게 한동안 농락당한 꼴이 되었다.
세번째 요인은 대학에 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대학사회에도 몰려들면서, 한국의 대학들은 너나할 것 없이 경쟁력 향상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교육의 질적 수준보다는 외형적 규모가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교수들에게 요구된 것은 연구업적이었다. 연구논문의 숫자와 연구비 수혜금액에 따라 보수와 승진여부가 결정되었다. 황 교수 사태는 한국의 대학들이 교육기관으로서의 내실보다는 외형적 성과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생긴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학문적 검증보다는 연고와 위계를 중요시하는 교수사회의 전근대적 풍토도 황 교수의 논문조작을 신속히 감지할 수 없게 했다.
다시는 황 교수 사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미 정부와 언론 모두 과오를 인정하고 신뢰회복을 위한 대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사회가 황 교수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일하다. 교수집단의 자기반성의 목소리나 시스템 개혁의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부 개인의 윤리적 문제 혹은 자연과학연구라는 특정분야의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이다.
황 교수 사태는 한국대학의 교육과 연구풍토의 치부가 드러난 부끄러운 사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감시와 견제가 부족하고, 외형과 실적만을 강조한 대학사회의 풍토가 황 교수팀의 사기 유전자를 배양한 것이다.
이제라도 대학교수들이 국민 앞에 사죄하고 국민들이 믿을 만한 연구와 교육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교수도 믿을 수 없다”는 허탈감이 “대학교수를 어떻게 믿느냐”는 혐오감으로 국민정서가 바뀔 것이다.
지식인과 교육자의 상징인 대학교수조차 국민이 믿을 수 없다면, 과연 한국의 미래는 누구에게 믿고 맡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