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얼마 후 진짜 장본인이 집에 나타났다. 가출했던 아이가 살아 돌아 온 것이다. 죽은 아이는 다른 아이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 이야기를 예로 들은 프랑스의 사회심리 학자 구스타브 르봉은 바로 군중심리가 그 원인이라고 했다. 최초 목격자의 단정이 여러 마을 사람과 심지어 그 아이의 부모까지 ‘그 아이가 바로 죽은 아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가리켜 군중이 가지는 심리적 전염 현상이라고 말한다.
세칭 ‘황우석 파동’이라는 현재진행형 사건에서 우리는 이 군중심리의 발현을 목격한다. 당초 비윤리적 난자체취를 폭로하던 때 모 방송국은 ‘공공의 적’이 되었었다. 그러다가 ‘사이언스’ 논문이 가짜 혹은 ‘인위적인 실수’로 드러나자 이번에는 급전직하 황 교수가 과학계의 사기꾼으로 바뀌었다. 급기야 서울대가 자체 위원회를 구성, 진실규명에 나섰고 당사자들의 고발에 따라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다.
사태가 이렇게 진전되자 세론은 두 갈래로 나뉘어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대 파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우리 사회의 군중심리와 그 전염이다. 냉정한 이성적 분별력이나 지식과 판단으로 주장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군중심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누가 손가락질 하는 쪽을 따라 한 쪽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서울대 특별조사위가 냉정한 ‘과학재판’을 했을까. 이미 사회적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내린 죄과에 대한 확인에 기울었던 게 아닐까. 단언키는 어렵지만 여기에도 군중심리가 작용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은 황 교수가 과장되고 거짓된 데이터를 이용하여 품격미달의 연구로 사람들을 속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군중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의 군중이다. 또 있다. 해방 당시 서울역의 군중, 5·18 당시 광주의 군중. 가까이는 2002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들. 그 심리적 맹목성과 추종방향에도 불구하고 군중심리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군중은 역사를 바꾸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콜로세움의 군중은 기독교도를 사자에게 물려죽게 만드는 로마황제의 ‘사육제’를 충동질 했지만 파리 혁명의 군중은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광주의 군중은 민주주의 혁명 과정에 기폭제가 되었고, 다시 붉은악마가 몰아 온 8백만의 군중은 한국의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을 이루어 냈다.
좋던 싫던 군중심리는 우리 사회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성사회, 냉정한 판단, 어쩌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은 그 특질을 강건하게 유지한다. 더욱이 지금은 익명의 인터넷 군중이 깔려있다. 대학 강단에 던지는 큰 연구과제다. 군중은 이제 무엇을 잉태시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