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전공은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당시의 우리 사회에 딱 맞는 분야였다. 그래서 그의 학문적 업적은 그의 취미였던 공부만큼이나 높이 쌓여갔다. 그러는 사이 그는 국내외 학계에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았고 두루두루 학계의 중책을 맡았다.
공학의 특성상 그는 일반 학문을 전공하는 학자들보다는 많은 연구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그의 연구 실적이 쌓여갔다. 그는 그가 쌓은 연구 업적만큼 학계를 선도하는 학자로서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 친구가 지난 해 어느 날 연구비 부실 사용혐의로 사법처리 되었다는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로 받았다. 전혀 뜻밖의 소식에 귀를 의심하면서 되물었다. 그 전화를 받기 얼마 전에 뉴스로 명문 공대 교수가 연구비 부실사용 문제로 구속되었다는 보도를 들었지만 그게 공부만 하던 내 친구 A교수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터여서 충격이 컸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부부가 같이 만나면서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건 그 친구가 정말 공부 밖에 모르는 친구이고, '곡식에 제비'처럼 돈에 대해서도 별 신경을 안 쓰던 친구여서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전화해준 친구에게 사법처리가 사실이냐고 재차 물었었던 그런 친구 A교수였다.
전화를 준 친구와 같이 A교수에게 면회를 갈 날짜를 잡아놓고 있는데 다시 친구한테서 A교수가 보석으로 풀려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위로 겸 전화를 준 친구와 함께 친구 A교수를 만났다.
내 친구 A교수를 만난 것은 그가 교수직에서 해임된 후였다. 연구와 강의가 전부였던 그는 한 학기동안 집에서 아무런 일도 못하고 그냥 보낸 것이다. 우리 친구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그였지만 험난하고 야박하고 매정한 세상살이에 지쳐있었던 그의 눈빛이 내게는 숨김없이 감지되었다.
친구의 결백을 확신하고 있던 나는 "연구비를 연구목적 외에 정말 개인적으로 쓴 것은 없는가?"를 재차 물었고 A교수는 "자기가 이런 험한 일을 당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처에게는 정말 미안한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자신은 부인에게 월급 이외의 돈을 갖다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연구 성과급과 자문료까지 모아서 학교의 열악한 실험시설개선을 위한 기금으로 학교 당국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친구 A교수의 말을 들어본 바로는 그는 연구비를 개인적으로 유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받은 연구 성과급과 기술 자문료 등을 모은 십수억 원을 실험시설 개선을 위한 기금으로 학교 당국에 기꺼이 내놓았음에도 그에 대해서는 전혀 인정을 하지 않고 연구비를 집행한 영수증이 잘못 처리된 혐의로 기소되어 해임까지 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친구 A교수의 말로는 몇 년 전부터는 연구비 지출 방법이 개선되어 연구비를 카드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서 영수증 문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있었던 연구비의 관행적 영수증 처리가 문제되어 결국 내 친구 A교수는 교수직을 박탈당한 것이다.
고집스럽게 공부와 연구와 교육밖에 모르던 유능한 교수가 그것도 몇 년 전에 연구비 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달리 방법이 없어서 관행적으로 처리된 영수증 문제로 연구하고 가르칠 기회를 박탈당해야 할 만큼의 무거운 징계를 받아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그래서 가시지 않는 것이다.
'모 명문 공대 A교수가 연구비를 부정 사용한 혐의로 구속되고, 학교에서 해임되었다.'는 한 줄의 신문기사로 순수한 열정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실험시설 개선에 상당한 금액을 기여한 정상은 참작되지 않고 그의 사회적 활동이 모두 끝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아량도 없고 희망도 없는 살벌하고 경직된 사회가 될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친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이슈의 타깃으로 삼아 유능한 한 과학자를 이렇게 매장시키고 연구의 기회를 빼앗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차기 국제학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적으로도 큰 역할을 해야 할 내 친구 A교수는 "현 상황에서 다른 모든 것은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몇 년 지나면 연구의 맥이 끊겨서 연구력을 잃을까 걱정이다."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공부 밖에 모르는 미욱한 친구인 것이다. 나는 그런 친구 A교수의 결백과 순수함을 굳게 믿고 있어 '사필귀정'이 될 거라 보고 있다. '사필귀정' 그게 내가 친구 A교수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