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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부흥운동의 재조명' 학술심포지움 7일 공주대서 개최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는 오는 7일 오전 10시 30분 예산캠퍼스 이벤트홀에서 '백제 부흥운동의 재조명 학술심포지움'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공주대 예산캠퍼스 이전 기념과 백제 부흥운동의 시발지이며 최후 거점이었던 임존성이 위치한 예산에서 백제문화연구소(소장 윤용혁)와 지역개발연구소(소장 최원회)가 주관한 행사이다.

학술심포지움 개요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도성이 함락된 660년 8월부터 663년 11월까지 만 3년동안 전개된 백제 부흥운동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조명이 미흡한 관계로 이번 심포지움을 통하여 발표자 6명, 토론자 6명 등 국내외 학자 다수가 참여하는, 백제부흥운동 전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학술 심포지움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백제 부흥 운동의 재조명 학술발표 주요 내용

- 양종국(공주대 교수) '7세기 동아시아 정세와 백제 의자왕' : 백제의 멸망은 의자왕의 실정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당나라와의 사대외교를 청산하고 자주외교를 펼치는 과정에서 빚어진 돌발사태라고 보았다. 실제로 백제는 멸망하기 직전까지 왕조의 말기적 현상, 예컨대 농민경제의 파탄이나 그에 따른 백성들의 유민화(流民化) 현상, 또는 반란과 같은 사실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신라로부터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었으며, 인구수도 620만에 이를 정도로 충실하였다. 계백장군의 결사항전이나 의자왕의 항복 후 곧바로 백제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된 부흥운동도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 노중국(계명대 교수) '부흥백제국의 성립과 몰락' : 백제 부흥군의 활동은 '운동'이 아닌, '백제왕국의 부흥'으로 보아야 한다. 백제 부흥군의 활동을 전하는 역사기록은 모두 승전국인 신라나 당나라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부흥군을 '적당(賊黨)'으로 표현하고 부흥백제국을 왕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부흥운동 초기의 전투는 부흥군이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일본서기}에도 부흥 백제국을 당당한 '왕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부흥운동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부흥 백제국'을 당당한 왕국으로 인정하고, 나당연합군 중심의 서술을 부흥군 중심으로 재해석 할 필요성이 있다.

- 이재석(고려대 교수) '백제부흥운동과 야마토정권' : 일본이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규모 군사력을 백제 땅에 파견한 것은, 백제의 부흥에 의하여 일본이 당으로부터의 무력적 압박을 막으려는 의도에서였다. 또 일본에서 귀국하여 부흥백제국의 왕이 되었던 풍왕에 대하여 이를 일본측의 계획적인 책봉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적절하지 못하다. 풍왕은 부흥군에 의하여 옹립된 부흥백제국의 왕이었다.

- 서정석(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 '백제 부흥운동기 군사활동과 산성' : 백제의 행정 및 군사상의 주요 거점에 설치된 5방성(五方城)중 예산의 임존성은 그 서방성(西方城)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백제는 신라와 달리 군사상의 주요 요충에만 성곽을 축조하였던 것이 그 특징이고 예산의 임존성도 서방성으로서의 비중을 배경으로 부흥운동의 주요 거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심정보(한밭대 교수) '백제 부흥운동과 임존성' :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 임존성에 대해서는 예산 대흥 봉수산성이 바로 임존성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근년 이를 부정하는 논의가 제기된 것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며, 기존의 인식과 같이 봉수산성이 바로 임존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봉수산성은 화강암을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한단한단 쌓아 올리고 있어 백제 산성의 축성법을 잘 보여주고 있고, 또한 성내에서 '임재관(任存官)' 등의 문자 기와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봉수산성이야말로 백제 부흥운동의 시발지이자 최후의 현장으로 기록에 나타나는 임존성임이 분명하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2-11-05 오전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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