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기 전세계 사람들 각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냉전. 냉전은 정치 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전세계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행사했다.
나아가 사회를 견인하는 뿌리를 형성했던 지식인 사회와 그 근거지인 대학마저 개조했다.
‘냉전과 대학’은 그 구체적 과정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당대에 냉전이 작용한 방식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필자들은 △연구과제를 왜곡하고, △비판적 동료들의 제거에 동조하는 정치적 학자들을 양산하며, △미국의 지적 오만을 조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동하며 냉전이 상아탑을 장악해갔음을 입증해낸다.
하버드대의 르원틴은 ‘기업가’적인 교수들이 대학으로 유입되는 엄청난 금액의 공공자금을 통해 전통적인 지식인으로서의 표상을 벗어 던지고 냉전구도의 협잡꾼으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파고든다.
특히 지배권력과 대학간의 이런 ‘파우스트적 거래’로 응용과학과 정치학 같은 전략적 학문들은 과분한 후원을 받으면서 지배권력이 필요로 하는 이데올로기와 기술을 제공하고, 대신 부와 특권을 쌓았음을 밝힌다.
필자들은 냉전문화가 지역학·인류학·정치학 등 각자의 전공분야에 끼친 영향을 설명함으로써 그 과정을 더욱 극명히 드러낸다.
버클리대 인류학 교수인 로라 네이더는 “미국의 사회인류학은 원주민 착취와 지배를 위한 식민주의의 시녀”였을 뿐이라고 한다.
같은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하워드 진 역시 “국제문제에 있어 미국이 펼친 개입주의 외교정책에 정당성과 대의명분을 이론화하는데 가장 열성적이었던 이들이 바로 외교사 학자집단”이었음을 갈파한다.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의 외연조차 해체시키지 못한 우리나라와 우리 대학에게 이 책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우리 대학이 물량화된 경쟁력주의의 화신이 되어 ‘지성’ 대신 ‘돈되는 지식’만 탐닉하는 욕심쟁이들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진득하게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