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한 최 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피난처인 부산에서 경남여고에 입학했으나 법원 직원으로 취업하는 바람에 학교를 중퇴하게 됐고 결혼과 함께 영영 학업의 꿈을 접어야 했다.
두 아들이 미국과 독일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취득, 교수로 활동할 만큼 자녀교육에도 성공한 최 할머니는 5년전 남편과의 사별을 계기로 만학의 꿈에 도전하게 된다.
최 할머니는 서울 소재 대안학교인 한림여자실업고에 입학, 각고의 노력 끝에 2001년 2월 고교 졸업장을 받았고 그 해 안산1대학에 특례입학했다.
이후 최 할머니는 지난 2년간 학교 앞에 방을 얻어놓고 거주하며 학업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쏟았다.
"나이를 먹으니 기억력이 떨어져 외워도 외워도 잊어버리데요. 매일 새벽 2시까지 강의노트를 펼쳐 놓고 공부했지요. 서서히 요령이 생기니 한결 수월했습니다"
최 할머니는 까마득한 손녀뻘 동급생들로부터 '할머니'가 아닌 '이모'라는 호칭을 들어가며 마음 좋은 급우역할을 톡톡이 했다.
"나이 어린 동급생들이 딸 같고 며느리 같고 해서 가끔 단체로 밥도 사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료에게는 책과 학용품을 사주기도 했지요"
최 할머니는 자취방에서 넘어져 다리뼈에 금이 가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2년 평점 3.51을 기록했고 보육교사 1급 인정서와 생활예절지도사 1급 자격증,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방과후 지도사 인정서 등을 각각 취득했다.
"나이가 조금만 젊었어도 4년제 대학에 편입학했겠지만 일단 무식은 면했고 자격증도 땄으니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최 할머니는 "부모가 유산으로 물려준 강원도 철원 땅에 노인 요양원을 지어 노인 눈높이에 맞는 봉사활동을 펼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