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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통한 평화는 결국 자기 모순"
결국 세계적인 반전여론과 주요강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은 UN안보리와 국제법을 무시하고 이라크 공격을 감행했다.

이제 국제질서는 예측불허의 또다른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냉전시기보다 더 불안한 질서가 예견되고 있다. 지난 반세기를 지배했던 냉전기는 극단적이었지만 논리가 분명했고 편가르기도 자명했다.

한쪽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진영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공산진영이 있었다. 우파는 친미고, 좌파는 반미라는 등식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좌파이론이 운동권을 지배하던 80년대 한국사회도 이런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냉전종식 후 세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졌고, 9.11테러는 세계를 또 한번 뒤흔들어 놓았다. 그 결과, 국제정치는 새로운 초상을 그리고 있다.

포스트 냉전시대에 자유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는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편가르기의 기준이 될 수 없다. 9.11테러로 빚어진 미국의 대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국제사회는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테러와 반테러’라는 두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미국의 편에 서서 테러에 대한 응전을 선포하든지, 테러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분류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이 구도는 이분법적이고 흑백논리였다. 침묵이나 중립, 관용은 용납되지 않았다.

아프간 전쟁을 승전으로 이끈 미국은 국제사회의 절대강자로 군림했고, 미국은 무소불위의 위용을 떨치기 시작했다. 16세기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펠리페 2세 시절의 스페인이나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대영제국보다도 더 강력한 패권을, 오늘날 미국은 가지고 있다.

미국의 강경 매파의 대변인격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군사, 경제, 기술, 문화 등 네 가지 결정적 영역에서 절대적인 헤게모니를 구가하고 있는 세계제국’이라고 정의했다. 절대강자 미국은 이라크공격을 앞두고 같은 서구진영의 프랑스 때문에 고심해야만 했다.

미국은 영국과 함께 외교적인 압력을 통해 유엔안보리에서 이라크 무장해제를 위한 전쟁결의안을 통과시키고자 했다. 부시는 외교 총력전을 폈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유엔 안보리 국가와 주변 국가들의 지지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명분도 합법성도 없는 전쟁에 대해 국제사회는 냉담했고, 미국은 안보리 비상임 국가들의 지지 확보에도 실패했다.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프랑스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러시아나 중국도 미국을 반대했다.

안보리 이사회의 표결에서 소수로 전락하는 수모를 받기보다 차라리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무시한 불법적인 무력행사에 나섰다. 수모를 받기보다는 욕을 먹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전쟁에 적극 참여했고, 프랑스는 러시아, 독일과 함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미국내에서는 프랑스의 반미에 대해 때아닌 반프랑스 감정이 일어났고, 미국 의회내 식당에서는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라 이름을 고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한편, 미국과의 미묘한 관계로 인해 한 지붕 유럽을 내세우며 통합으로 치달아왔던 유럽도 균열을 맞고 있다. 영국은 전후 미국의 최대 동맹국으로서 미국과 행보를 같이해 왔다. 대영제국의 쇠퇴이후 미국에게 패권을 넘겨준 영국은 친미를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채택해왔다.

한편 프랑스는 앵글로색슨 국가와 줄곧 갈등관계였던 역사적 유산도 있겠지만, 드골 이래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며 자주외교노선을 견지해왔다. 재미있는 점은 영국은 좌파 신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미국을 지지하고 있고, 프랑스는 우파가 집권하고 있지만 미국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정치는 좌파친미와 우파반미가 대립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쟁이후의 세계는 더욱 복잡하고,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이다. 미국은 전쟁에서 쉽사리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쟁이 오히려 국제사회의 불안과 국제질서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통한 평화, 대량살상무기억제를 위한 대량살상은 결국 자기모순이다.

최연구 국제정치학박사/본지 전문위원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3-03-21 오전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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