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세계화는 표면적으로는 통합과 다원적인 차원에서의 공익을 내세우지만, 실제적으로는 경쟁에 의한 차별적인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뿐만 아니라, 추종집단의 사회․문화적 정체성과 특수성을 해체하거나 말살시킬 수도 있는 야누스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찬반 논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는 교육시장개방 문제도 세계화의 이런 야누스적인 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는 교육개방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와 교육이 발전하게 될 것인지 폐해를 당하게 될 것인지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교육개방을 추진하거나 지지하고 있는 세력은 경쟁을 통하여 열악하고 부실한 교육을 개혁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임으로써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저지 투쟁세력은 교육의 공공성이 무시되면서 기회균등의 원칙이 무너져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함은 물론 공교육이 붕괴되고 나아가 교육세습사회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항변하고 있다.
교육개방의 대상과 수준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되진 않았으나 정부는 대학과 성인교육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교육부 담당자에 의하면 교육개방을 하더라도 국내법상 제한을 모두 유지하기 때문에 교육의 상업화는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교육개방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은 우리의 특수한 사회·교육문화 풍토를 무시한 교육의 상업화로 인하여 우리 국민은 더욱 엄청난 교육비에 시달리게 되고 우리 사회는 불평등이 한층 더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두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기에 앞서 현재 우리 교육의 실상이 과연 어떠한가를 냉철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중등이하 교육은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향해 인권유린의 도를 넘어 아동학대에 해당할 만큼 비인격적인 주입식 내지 ‘찍기식’ 학습 방법과 요령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고, 학생들은 학부모의 ‘뜨거운 후원’과 교사의 ‘열렬한 사주’를 받아가며 ‘시험기계’가 되어 대학입시의 서열화 경쟁에서 한 등이라도 남보다 앞서기 위하여 소아적인 식자(識者)가 되고 있으며, 대학은 학교별 서열화와 파벌화도 부족하여 지역별, 학과별, 전공별로도 서열화 되어 학벌의 신분화, 전공의 우열화, 직업의 차별화에 앞장서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우리 교육은 세계의 흐름에 뒤쳐져 국가경쟁력이 뒤로 밀리는 줄도 모른 채 ‘우물 안 개구리식’의 학력경쟁과 ‘도토리 키 재기식’ 학벌경쟁에만 급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교육의 이러한 결과는 스위스의 세계경영발전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에서 발간한 ⌜2001년도 세계경쟁력연감⌟(The 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 2001)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전체 인구수에 대한 ‘고등교육의 성취도’에 있어선 36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5위(34.0%)로 서구 선진 국가들 수준을 나타내었으나, ‘세계화가 자국의 경제에 미친 영향력’에 대한 항목에선 49개 조사대상국 중 34위(5.183), ‘세계화에 대한 태도’에 있어선 20위(5.976)로 중간 그룹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경제에 대한 경쟁력’에 있어선 49개 국가 중 47위로 최하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산업화에 진입한 한국의 고등교육이 경쟁력 면에서 최하위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은 고등교육의 양적 팽창이 이제는 질적 향상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임을 제시해 주고 있다.
위의 지표가 말해주듯이, 우리의 고등교육이 학력사회화에는 추진력이 되었지만 세계화와 국가경쟁력 향상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세계화라는 강풍을 타고 한반도에 상륙한 교육시장개방이 낙후된 우리 고등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호재가 될 것인지 퇴보시킬 악재가 될 것인지는 우리의 대처 방식에 달려있다.
만일 각 이익단체와 관련 당사자들이 소아적인 집단이기주의나 근시안적인 아집과 독선으로 이 문제를 풀고자 한다면 호재가 아닌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에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될 숙명에 처해 있는 우리로서는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든지 간에 우리의 정치,경제 및 문화적 가치와 전통은 주도집단의 강력한 힘에 의하여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의 불가항력적인 힘의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문을 굳게 닫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할 적기(適期)가 언제인가를 잘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