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벌어진 전쟁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우리나라의 경제를 위하여, 우리는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결국 그 경우 전쟁의 승자는 연합군이 될 터이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약소국가가 설 땅이 좁아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쟁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파병요청이 있었고, 인권위원회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취지의 성명이 있었다. 결국 국론의 분열은 국가기관에까지 이른 셈이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닭을 잡는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애써 기르던 귀여운 닭의 목을 비틀어 잡고 털을 뽑는 모습이 끔찍하고 잔인하게만 생각되었다. 왜 정직하고 착하게 살라고 하시던 어른들이 저렇게 닭을 죽이는가? 문제는 내가 닭요리를 맛있게 먹었다는 점이다.
누군가 닭을 잡지 않으면, 닭을 먹을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상급생에 이르러서이다. 내가 끔찍하다고 닭을 잡지 않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그 일을 미루는 것일 뿐이었다. 결국 중학교 때쯤, 어머니 대신 내가 닭을 잡기 시작하였다. 고기를 먹으면서, 백정을 업신여길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경제원론을 가르칠 때 장화와 포장의 이야기를 한다. 열 집이 모여 살고 있다. 큰 길까지 나가는 진입로가 진흙탕 길이어서 돈을 모아 진입로를 포장하자는 제안이 있다. 포장비용은 100만원이니까, 한집이 10만원씩 부담하면 된다. 포장하지 않고 각자가 장화를 사 신으면, 가구당 4식구분의 장화값 20만원을 부담하여야 하므로, 결국 모든 가구가 10만원씩 절약되는 셈이다.
이러한 좋은 제안도 실제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10만원을 부담하는 것이 낫지만, 잘 하면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남은 아홉 가구로서도 장화값 180만원보다 포장비 100만원이 싸니까, 내가 빠져도 다른 가구들이 포장하겠지. 이것이 잘 알려진 무임승차의 문제이다.
아, 정의의 관념은 달리 말한다. 그렇지만, 기실 다른 가구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 내가 10만원을 내도 결국 다른 사람들이 분담액을 내지 않아서, 결국 포장이 무산될 수 있다. 그 경우에 분담금도 내고, 장화도 사야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분담금을 내기 않고 기다려야 한다...
퍼즐은 이렇다. 자발적 합의에 의하여 진입로가 포장될 수 있다고 치고, 위의 네 가지 상황 중 최선의 전략인 분담금을 전혀 내지 않는 전략보다, 더욱 나은 전략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포장이 포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포장을 반대하는 것이다. 반대하는 이유는 개인적 취향이든 자연보호는 아무래도 좋다. 이 경우, 남은 아홉 가구는 사회적 잉여 중 얼마간을 반대자에게 뇌물로 줄 용의가 생기게 된다.
단순히 포장의 문제라면, 이러한 처신은 성공하기 어려울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안이 조금 복잡해지면, 실제로 유사한 처신이 생겨나고 또 적지 않게 성공하기도 한다. 댐을 질 때마다 보상금을 노리고 수몰지구의 과수원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닭을 잡는 문제도 결국 같은 셈이다. 잘하
면, 명분도 챙기고 이득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실 닭을 잡는 것을 회피하거나, 포장을 반대하는 것이 꼭 용기로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비겁해 보이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일 수 있다. 공자는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행하지 않는 것을 비겁이라고 불렀다. 무엇이 행해야 할 일일까? 결국 민중의 삶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가치와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닐까? 명분과 실리를 함께 좇는 것이 아니라, 내 의견대로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졌을 때, 민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책임 있게 검토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