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임명제에서 공모제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선임된 김학천 현 사장의 임기는 다음달 8일로 끝난다. 현재로서는 EBS 사장 선임권을 갖고 있는 방송위원회의 위원 구성이 늦어짐에 따라 후임자 결정도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EBS 사장의 역할과 조건에 관한 논의가 무르익어야만 선임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논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EBS는 다른 채널에서 접하기 힘든 내용과 형식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면서 공영 교육방송 시대의 기틀을 다잡았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와우! 미디어탐험’은 우리나라 방송 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어린이 대상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이다.
애니메이션과 뮤직비디오 기법을 도입해 교육적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다. 매회 새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영어를 자연스럽게 즐기며 배울 수 있는 ‘잉글리시 카페’는 창의적인 기획이 돋보인다. PD 6명이 6mm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EBS판 ‘그것이 알고 싶다’인 ‘PD 리포트’는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 사이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실제로 방송위원회가 지상파방송사업자의 재허가 추천을 위해 82개 채널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송 평가에서도 EBS는 KBS 1TV와 함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시민단체 등에서 수여하는 좋은 방송 상과 해외 방송제 등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시청자들도 그 진가를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했다. 0.5-0.6%에 머물던 EBS의 평균 시청률은 2001년 접어들면서 1.1-1.2%로 두 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방송은 프로그램으로 말한다는 기본 원리에 따를 때 EBS를 최고의 방송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다. 놀라운 사실은 다른 메이저 방송사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제작비가 투여된 결과라는 점이다.
그런데 제작비가 현실화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좋은 방송을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방송 산업에서 제작비가 프로그램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적은 제작비로는 결코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관건은 재원에 있는데 EBS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KBS로부터 배분받는 시청료와 방송발전기금 등으로 이루어진 공적 재원과 광고나 교재판매 등을 통한 상업 재원으로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업 재원의 비율은 갈수록 증가해 2002년에는 전체 수입의 70%까지 육박했다.
공영방송의 설립과 운영 목적은 공익성 추구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율뿐 아니라 운영 재원의 안정적 조달이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은 EBS의 상업 재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비정상적이며 안정적이지도 않다.
공적 재원을 확충함으로써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체 수익사업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상업적 재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공적 재원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상업적인 재원 조달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생존에 위협이 된다. 오늘날 EBS가 처한 딜레마다.
새로 선임되는 사장은 EBS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공익성’과 방송사 운영에 요구되는 ‘기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한다. 기업성의 문제인 EBS의 ‘생존’은 공익성의 문제인 우리나라의 ‘방송’과 ‘교육’에 너무나도 절실한 과제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