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에 한반도의 남쪽 지역은 일본제국주의와 미군정 및 대한민국이라는 흙 갈이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고등교육 행정가들은 유교적 또는 반유교적인 봉건시대와 식민시대의 혼재된 가치관을 가지고 대학이라는 나무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가치와 특성이 유교적이고 어느 것이 반유교적이라고 명확하게 한계를 정하여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상호호혜성이 결여된 가부장적인 독재적 권위주의, 비합리적인 폐쇄적 정실주의, 소아적인 패거리적 연고주의는 유교적이기보다는 반유교적 내지 사이비 유교적 문화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행정에 편만하고 있는 대표적인 반유교적 특성은 위에서 언급한 독재적 권위주의, 폐쇄적 정실주의 그리고 패거리적 연고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방적인 권위주의적 관료체제로 인하여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은 구호에만 그치고, 패쇄적 정실주의로 인하여 밀실인사와 편파적인 행정체제가 구축되고, 패거리적 연고주의로 인하여 학벌주의와 학문의 종속주의가 야기되고 있다.
이렇듯 사이비 유교적 가치가 우리 대학 조직문화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한, 문화사적 전환기를 맞아 세계화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새로운 대학상 정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우리의 대학이 새로운 조직문화를 창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포도과수원을 몇 년 동안 경영한 적이 있다. 이런 과수원 경영 경험에서 대학의 새로운 조직문화 창조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내년 포도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수확을 끝낸 후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지난해의 묵은 가지를 잘라 내고, 올 한 해 동안 건실하게 잘 굳은 가지를 골라 내년 봄에 푸른 새싹을 발할 수 있는 몇 개의 눈만을 남기고 가지를 전정(剪定)해야만 한다. 내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 묵은 가지를 과감히 잘라내는 포도과수의 전지(剪枝) 작업처럼, 오늘날 우리의 대학행정가들도 새로운 대학문화의 나무에 가까운 장래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반유교적인 표피로 감싼 묵은 가지를 과감히 잘라내는 작업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 묵은 가지에서는 새로운 포도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간단한 자연의 이치를 깊이 명심해야만 한다.
상하 간 또는 주종 간 언로(言路)를 막아 대학사회의 참여문화를 차단하는 독단적 권위주의, 대학행정의 공정성과 비판문화를 가로막는 폐쇄적인 소아적 정실주의, 학벌이나 파벌을 조성하여 차별문화를 조장하고 기득권을 옹위하여 학문의 동종번식을 도모하는 연고주의의 부면적인 가치를 지닌 반유교적 문화는 과감히 전정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교육 관료와 대학행정가들은 각 대학마다 지식기반사회에 부응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조직문화 창조를 위해 한국 고등교육에 남아있는 반유교적인 묵은 가지를 잘라 내는 일을 조금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반유교적인 가치와 문화에 젖어있는 교육 관료와 대학경영자들은 독단적 권위주의와 폐쇄적 정실주의 및 소아적 연고주의의 비민주적인 닫힌 조직체제에서 탈피하여 민본주의에 바탕을 둔 상호호혜적이고 민주적이며 합리적인 열린 조직체제로 거듭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이 여론선도자나 변화촉진자가 되어 누구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대학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고, 대화망을 구축하여 학문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류할 수 있는 분권적인 열린 조직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대학행정가는 한편으로 ‘도덕적 경영자’(moral managers)로서 반유교적인 대학 조직문화의 오염된 토양을 인본주의에 기초한 참된 유교적 토양으로 흙 갈이 하고, 다른 한편으로 ‘문화의 창조자’(cultural creators)로서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 밭에 ‘학문의 자유’라는 씨앗을 뿌려, 모두가 공생공영(共生共榮)할 수 있도록 ‘우리대학’이라는 문화공동체의 건실한 나무를 가꾸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조직문화를 꽃 피울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