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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 칼럼] 한국영화와 스크린쿼터
영화란 양가적인 속성을 지닌다. 하나는 그것이 예술의 한 분파로서의 성질을 지닌다는 점이다. 영화를 제7예술이라고 한다. 가장 나중에 나왔고, 다른 예술의 종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에이젠슈테인 같은 감독은 영화를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탄생된 예술 형식으로 보았다. 소설이 부르조아의 예술이라면 영화는 그 이후의, 부르조아 시대 이후의 지배적 예술 형식이 된다는 것이다.

영화의 또 다른 하나의 성질은 산업적 성질을 지닌다는 것이다. 영화는 창조과정에서부터 사회적, 집단적 행위이다. 다른 대부분의 예술행위들이 개인적, 고립적 행위인 것과는 대조된다. 이 점이 영화의 특수성이며,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근본적 속성이 된다.

스크린 쿼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영화가 이와같은 양가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 소이이다.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하거나 폐지하자는 정부측 논의는 영화를 산업적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논지이다. 일정 정도의 궤도에 오른 산업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개방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추세인 것은 확실하다.

세계화의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요구사항일 것이다. 민족자본이라는 개념은 이제 구태의연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상 자본이라는 속성에 무슨 민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영화는 산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예술이다. 문화라는 것이다. 문화는 자본과 같을 수 없다. 문화는 특수성을 지니며, 그런 특수성이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화 속에서는 민족이 문제된다.

동양문화는 동양문화의 특성을 지니며 서양문화는 서양문화의 특성을 지닌다. 한국문화는 한국만의 특성을 지니며 이는 다른 여타의 문화와는 다른 것이다.

이는 문화의 속성을 알려준다. 문화는 자본처럼 맹목이 아닌 차이를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소중하다. 다양성이 확보되는 까닭이다. 세계화란 자본적 논리이지 문화적 논리는 아니다. 문화에 있어서의 세계화를 부르짖는 것은 민족자본 운운 하는 것만큼이나 넌센스이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차이를 지향한다.

스크린쿼터제가 사수되어야 하는 까닭은 영화의 이 예술적, 문화적 속성 때문이다. 이 문화적 속성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모든 걸 경제적·산업적·자본적 논리로만 풀려하거나 접근하려 해서는 안된다. 한국은 한국영화를 원한다. 프랑스가 프랑스의 일본이 일본의 이탈리아가 이탈리아의 영화를 원하듯이, 그렇다. 한국영화는 세계영화(특히나 헐리우드 영화)와 같아질 수는 없다.

영화의 개방은 한국영화 보고 헐리우드 영화가 되라는, 같아지라는 강제에 다름 아니다. 문화란 필연적으로 차이이다. 그러므로 문화를 경쟁 속에 방치해둔다는 것은 오류이다. 경쟁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문화는 차이를 상실한다. 다시말하면, 한국영화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산업 자체의 몰락보다도 더 큰 일이 될 수 있다.

자본이 차이를 상쇄하려 든다면 문화는 차이를 요구한다. 영화는 산업이기 이전에 예술이며 문화이다. 영화를 산업적 논리로만 접근하려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화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일 것이다.

[이호림 객원기자 = 영서대, 영남대 강사]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3-06-30 오전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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