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향신문 경제부장, 편집국장, 주필
문화일보 주필, 전무이사 /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현재) 상지컨경영설팅(주) 회장,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고문
* 주요 저서
- 한국의 경제관료(공저), 1979 / 거탑의 내막(공저), 1983 / 한국의 이너서클, 2002
대통령 각자의 출신 기반에 따른 분류도 가능할 것이다. 지식인인가 군인인가 또는 노동자 출신인가에 따라 그 시대의 여러 특이한 현상들을 파악해 보는 방법이다. 인도의 저명한 사회 철학자 사카는 이와 관련하여 하나의 이론을 제시했다.
수 백년 동안 역사의 흐름을 지켜본 결과 통치권력자의 성분은 무인 지식인 노동자로 구분되며 이들 지배세력은 순환적 교체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무인시대가 끝나면 지식인의 시대가 오고 지식인의 시대가 끝나면 노동자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에 걸친 순환기를 나타낼 수도 있다고 그는 보았다.
여기서 무인이라면 칼이나 총을 든 군인뿐 아니라 기업가들도 이 범주에 넣고 있다. 역시 지식인이라면 문인이나 교수만을 범주에 넣고 있지 않다. 법조인 출신도 들어갈 수 있다. 노동자의 시대라면 폴란드에서 대통령을 지낸 바웬사같이 순수 노동자 출신만 들어가지 않는다.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치인도 노동자 시대를 이끌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는 그 시대 색깔 구분이 분명하다. 무인시대다. 국가주의가 지배되던 시대였다. 다음 김영삼 대통령에서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는 시기는 지식인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가 지배되는 흐름이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국가주의자들은 지배계층의 교체로 노동자적 정서가 강하게 일고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정권의 안보는 보수노선으로 기울 수밖에 없게 한다. 두 김씨 대통령이 정당 출신이고 노 대통령 또한 법조 출신의 정치인이지만 지식인 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저 숱한 화두와 담론이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상징성은 화두와 담론과 운동에 열중했던 재야의 지식인들의 제도권 진입이다. 그 현상은 노무현 대통령 이후 대학 강단의 교수들이 대거 제도권의 요직에 포진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물론 박정희 시대도 교수들은 정권에 참여했지만 지식인들이 정권의 헤게머니를 이런 규모로 장악한 적은 없었다.
일단 지금이 지식인 시대라고 본다면 두 가지 명제가 떠오른다.
과연 이 지식인의 시대는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다음 시대는 노동자의 시대로 순환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지식인의 시대의 생명력은 도덕성 윤리성 논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무인시대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말하는 것이고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것만으로 국가 생산력을 높이고 국민의 부를 축적시킬 수는 없다.
이런 약점에 대한 집요한 공격이 사회전반에서 일어나는 시기에 도달하면 '지식인들의 잔치'는 끝날 수밖에 없다. 경제 불황에 대한 노 정부의 민감한 대응이 이런 점을 파악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할 길이 없다. 권력의 안보를 위해 반대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술적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이나 기업세력 말이다. 독자적 생산양식을 창출하지 못하고 산술적 지지율이나 높이려는 속수라면 '순환'의 징후가 이미 싹트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시대로 이어지는 순환법칙이 나타날 것인가. 주목할 만한 징후들은 이미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났다. 노동계가 내세운 지식인 후보는 지지율에서 괄목할 만한 약진을 보여주었다. 노동운동이 들판으로부터 제도권 정치 세력의 싸움터로 진입한 것이다. 붉은 머리띠 불법 파업 집단이기주의로 상징화로 대중적 정치기반을 아직 확고하게 구축하지 못했지만 그 너머 배경 그림은 간단치가 않다.
수많은 NGO의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고 엄청난 사회운동이 들판에 질펀하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던 부정적인 눈으로 보건 역사의 흐름이란 사실의 인식만큼은 해 두고 있을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노무현 정부의 출현을 상상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지만 훨씬 앞서 그 예후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