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대학의 3대 주요기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각 영역별로 강조되는 내용이나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특히 디지털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면서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대학의 역할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대학도 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학문의 탐구라는 상아탑의 위용과 전통만을 지향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대학은 이러한 사회변화의 물결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미래 사회변화를 예견하고 주도할 수 있는 혜안과 통찰력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중차대한 임무와 역할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한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식을 창조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사회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역기능적 측면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필요한 치유책을 개발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대학은 미래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그 방향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학이 수행해온 임무와 역할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학의 임무와 역할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임무와 역할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대학이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미래의 대학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자 근간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윤리와 도덕 재무장 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 는 것은 고리타분한 옛것을 되살려 오늘에 적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빠른 사회적 변화와 함께 별 다른 노력 없이 단숨에 목적을 달성하려는 성취 지향적 속도 담론에 윤리와 도덕이 매몰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다시금 되짚어 보자는 뜻이다. 미래 사회는 기술발전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며, 그러한 기술발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가치판단 기준도 원칙과 윤리적 규범가치에 근거를 두기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하면 빨리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고자 기계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강하게 대두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위기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마련과 도덕적 재무장의 노력이야말로 대학이 주도해야 될 핵심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대학에서는 응용지식과 기술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의 기반이 되는 기본(Basic)과 토대(Fundamental)를 굳건하게 갖추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본질주의자들의 주장인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s)라는 움직임을 재음미해 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디지털의 꽃은 아날로그 기반 위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 지난 몇 년의 디지털 광풍(狂風)이 남기고 간 소중한 교훈이었다. 한때 디지털은 아날로그적 기반 없이도 무한대의 발전을 할 수 있다는 허상을 심어 주었으며, 그 허상의 결과는 생각보다 참담했다. 윈도우의 화려함은 도스의 우직한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망각했다. 가볍고 빠른 디지털 세계는 인간적 감수성과 창조적 상상력의 근원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꿈꾸는 아날로그에서 유래한다는 점을 망각했다. 대학은 이러한 디지털 기술이 주도하는 가벼운 속도담론에 대항하여 기술적 꽃을 만개 시킬 수 있는 기본과 토대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사회변화의 동인을 깨닫게 하고 그 힘을 믿고 묵묵히 미래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양성하는데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셋째, 대학교육은 앞으로 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쪽으로 나야가야 할 것이다.
전문화, 세분화로 줄달음친 대학교육의 전문성 추구를 위한 노력은 근본부터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전공영역의 세분화는 결과적으로 특정 영역의 전문적 깊이를 더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전공영역간 커뮤니케이션 단절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삶은 하나의 총체적 관계망으로 엮어진 거미줄이다. 각각의 독립적 특수성과 전문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하나의 생태계속에서 상호영향을 미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전문성에 기반을 둔 독립적 처방전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 처방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제 통합적 안목으로 학문 간의 가로지르기와 경계 넘나들기를 통해 잃어버린 삶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노력을 대학이 주도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독립적 단위 개체로 생각하는 개체론적 사고는 우리 삶을 세분화시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잃게 할 우려가 있다. 이제 대학이 나서서 개체론적 상흔을 치유할 수 있도록 관계론적 안목을 지향하는 교육개혁을 주도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넷째, 생태학적 휴머니스트를 양성하는 교육에 대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이 이러한 활동을 보다 풍요롭게 전개하기 위해서 기술적 수단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이 빠져버린 기술주도적 사회변화의 이면에는 갖가지 역기능적 현상이 숨어 있다. 이제까지 기술개발을 통한 무한 개발과 발전의 꿈을 키워오면서 인간적 삶의 근간이 되고 있는 자연은 황폐해지고 환경은 오염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인간의 자연지배와 개발이 갖고온 숙명적인 결과임을 자각하고 이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자연은 모두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상생한다는 생태학적 지혜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인간도 자연 삼라만상과 우주의 신비 속에서 하나의 작은 생명체임을 자각하고 더불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장을 대학이 마련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기술이 주도하는 사회발전의 이면을 통제하고 조정하며, 발전의 궁극적 지향점이 인간을 위한 목표로 귀결될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이성을 겸비한 인간을 양성하는데 대학이 주도적인 역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식을 다양한 연구개발 활동을 통해 창조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개발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발휘해왔다. 나아가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왔을 뿐만 아니라 건전한 비판을 통해 사회적 갈등의 해결방안을 제시해왔다. 이제 대학은 윤리적 기반과 도덕적 판단을 근간으로 기본을 튼튼히 하고 무엇이 발전의 원동력인지를 파악하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폭 넓은 안목과 식견을 기반으로 깊이를 추구하는 전문가를 양성해서 개체론적 인식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관계론적 조망력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미래 사회발전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역할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관계론적 조망력을 갖춘 인간성 함양과 이를 기반으로 사회변화의 추동력을 지원하고 촉진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