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면에 나타난 “대화”란 딱딱하고 건조하고 모든 것이 결정적이고, 단순화되어 있을 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가 보았던 상대의 눈빛이나 격한 감정, 일그러진 표정이나 다정한 미소를 충분히 전달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왔다.
제한된 지면에 내용을 담게 되다보니 상대방의 전공 분야에 국한해서 얘기를 주로 나누게 되었다. 실은 정치가에게는 종교 얘기를, 물리학자에게 세상 얘기를, 사회운동가에게는 문학과 예술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당면 과제에 초점을 맞추어 질문을 했을 뿐, “과학과 종교의 갈등”, “정치와 경제의 갈등”, “人間 관계의 내면적 갈등” 같은 근본적이고 좀 더 철학적인 내용이 모두 제외되고 말았다.
요즈음 세상을 지식사회라고들 말하지만 우리의 정치적 시스템은 여전히 육체노동자가 다수라는 가정과 농업 노동력이 다수라는 가정에 기초해 있으며 이제 자본주의 시대의 사회, 경제, 정치의 역사들을 재검토해야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데 여전히 이와 같은 문제들에 접근하기를 꺼려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그것을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대화”의 몫이 아니었을까.
그 동안 우리의 “대화”는 과거 지향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는, 지나치리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주의에 충실하려 해 타개와 흥분, 예측과 고뇌와 같은 생생한 내용을 전달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참여해주신 여러분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계획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신문의 지면만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얘기를 나눈 본인의 불찰이다.
“대화”는 그러나 여기서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못 다한 얘기들을 여러분께 들려주기 위해서 계속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