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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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설명하는 각종 문구 중에 가장 부적절한 게 있다면 그건 '불교 철학을 쉽게 풀어 놓았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은 불교 철학의 지식을 쉽게 쌓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입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에 부처가 등장하고 그 내용이 불교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 누가 보더라도 공감의 즐거움과 깨달음의 명쾌함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자기를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 인생의 무게가 때로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명상과 자기 수양 관련서들 중 맨 앞 머리에 놓일 만하다면 지나친 상찬이라 할 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돼지들이 동반해 나섰다. 왜 하필 돼지일까. 문화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옮긴이 김지룡은 "일본어로 부처는 '붓타(ぶった)'이고 돼지는 '부타(ぶた)'다. 처음엔 이 비슷한 발음 때문에 불교 만화의 주인공으로 돼지가 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만화를 읽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탐욕의 화신인 돼지,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돼지, 그 돼지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 라고 적고 있다.
남들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원망하고 실연에 괴로워하고 다른 이들의 시선에 어깨 눌리고 상사의 처사에 분노하며 남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욕망에 몸이 단 우리들에게 부처는 시원스레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마음이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 불안한 마음을 찾아 오라고, 그러면 안심시켜 주겠다고 할 뿐이다. 돼지들과 함께 마음의 일주 여행을 마치고 다다른 자리는 과연 어디일까. 광고인이었던 지은이 고이즈미 요시히로는 친근하고 코믹한 '엽기 돼지'들이 등장하는 네 칸 만화 속에 그 길을 그려 넣었다. 현재 일시 품절의 상태이지만, 곧 새 표지로 단장하여 다시 선보일 예정이라 한다. 총 3권, 김지룡 옮김, 들녘.
맑은 바람이 그대를 깨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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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대강 하는 너그러움을 행해서도 안 되며 야박한 분명함을 행해서도 안 되고, 꾸물대는 너그러움을 행해서도 안 되며 엉성한 분명함을 행해서도 안 된다.' - 이덕무, 이목구심서.
다양한 형태의 잠언집이 쉼 없이 출간되고 있지만 실상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안 또는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서까지 마주치게 되는 짧은 명구들의 식상함 때문일까. 서양 사람 누군가의 이름이 함께 적힌 온갖 선언적인 문구들은 머리나 마음 어디에도 각인을 남기지 못한 채 휘발되어 버리곤 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잠언집의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번 더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게 되는 것은, 편편의 문장들에서 느껴지는 은은하고 맑은 향기 때문이다. 이덕무, 정약용, 박지원, 신흠 등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의 글에서부터 해학이 넘치는 구전설화에 이르기까지 고전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짧은 문장들은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해 준다. 고전의 딱딱한 번역이 아니라 현대적인 문체로 다듬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 생각날 때마다 펼쳐 들면 그 속에서 불어 오는 한 줄기 '맑은 바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강엽 편역, 웅진닷컴.
행복한 바보성자 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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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가 강을 따라 걷고 있었다. 강의 건너편을 바라보니 훨씬 더 평탄한 길이 펼쳐져 있었지만, 강에는 다리가 없었으므로 쉽게 건널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사내는 갈대를 한 아름 꺾어와 뗏목을 만들어 그것을 타고 강을 건넜다. 그러나 강 건너편에 닿은 사내는 공들여 만든 뗏목을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결국 사내는 뗏목을 등에 지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뗏목의 무게에 눌린 사내는 강 건너편에서 걸을 때보다 더 느리고 더 고통스러운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 중 '뗏목을 지고 가는 나그네' 편.
물라는 중동 이슬람 문화권에서 유명한 전설 속의 인물이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넓은 활동 무대에서 수많은 일화 속에 물라 외에 나스레딘(이 이름으로 국내에 출간된 책도 여러 권이다), 챠하, 호자 등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모두 동일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민담이나 우화에 가까운 그의 이야기들은 성자의 엄숙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며 때론 엉뚱하고 얄밉고 우습기까지 하다.
이 책은 물라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70여 편의 일화를 소개하고 각 편마다 일종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해석이라 하여 어릴 때 읽었던 이솝 우화와 거기에 덧붙인 '이 글의 교훈'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해석은 좀 다르다. 우화에 대해 또 다른 우화로 설명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만난 실제 인물들의 사례를 대입하기도 하고, 한 우화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과 부정적인 해석 두 가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일부는 동의하기 어렵고 일부는 심드렁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우화의 숨겨진 속뜻 혹은 색다른 접근의 이해를 도와 주며 공감의 진폭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저력은 지은이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온다.
칠레 태생으로 작가이자 만화가, 마이머, 배우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는 영화 <성스러운 피>의 감독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 난해한 판타지를 펼쳐 보이는 컬트 영화의 거장으로 꼽히지만 이 책은 그의 영화와는 달리 매우 친절하고 편안하다. 생활철학자이자 수행자로서 풍부한 삶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 개의 반지 이야기와 그의 낙관론적인 종교관과 세계관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일화는 책을 덮은 뒤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임왕준 옮김,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