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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자기가 선택한 길을 가는 것이 자유다
3. 자신에 대한 권력과 타인에 대한 권력

다른 모든 존재하는 것이 그런 것처럼 인간 실존은 정도의 문제지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죽음, 질병, 불운(不運), 부족한 재능, 게으름, 고독감 등이 자연적 실존으로서의 모든 인간에게 지워진 속박이다. 이런 속박의 근원을 신이나 악마에게 돌리거나 수련에 의하여 해결하려는 것은 사람이 가진 종교적 태도다.

불교의 성불(成佛) 또는 해탈(解脫)은 수련을 통해서 일체의 속박이 없는 일체지(一切智)에 들어가는 해방 과정이다. ‘일체지’는 도가(道家)의 자한(自閑)이나 소요유(逍遙遊)에 해당할 것이다. 기독교는 이것을 구원이라고 부른다. 낙원 또는 천국은 속박이 없는 경지다. 구원은 낙원으로 들어가는 절차다.

종교는 속박과 억압이 없는 완전한 자유의 세계를 제시한다. 이 완전한 자유의 세계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것이 현실 세계의 비참(悲慘)함이다. 그것을 원죄(原罪), 또는 무명(無明)이라고 부른다. 현실 세계의 부자유는 원죄나 무명이 그 실체라고 설교한다.

종교는 속박과 억압의 원인을 결코 개인의 바깥에서 찾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 죄' 때문이며 ‘나의 무명’ 때문이다. 그래서 원죄-구원-천국, 또는 무명-성불-열반의 과정은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 집중된다.

속박이나 억압이 인간의 타고 난 조건과 바깥의 '강자(强者)들'로부터 오는 것이 분명할 때도 '내 죄' 탓으로 돌린다.

그렇지 않고 본래 개인의 본성에 연유하는 억압을 사회나 공동체에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될 뿐이다. 자신을 가장 심하게 구속하는 것은 자연, 사회, 타인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사람은 그 누구와 투쟁하기 보다도 자신과 가장 많이 투쟁한다. 자신을 모르고 자신에게 이기지 못 하며 산다.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으로부터 자기가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이에 놀란 그는 온 아테네를 돌아다니며 지혜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지혜는 자기가 아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자도 같은 말을 한다. '자로여, 자네한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일세." 그러나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알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것은 자신에 대하여 아는 것에서도 똑 같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다. 자신에 관하여 아는 것이 정말로 아는 것일까.

자기 자신의 몽매, 무능력, 유약(懦弱)에서 자유롭기는 참으로 어렵다.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공부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자신의 무지에 대한 겸손한 탐구는 맹자와 스토아 학파의 에픽테토스로 이어진다. 에픽테토스는 노예적인 것과 자유로운 것을 평생 동안 추구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 <엥케이리디온>에서 말한다.

병은 육체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만, 만일 합리적인 선택 자체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합리적 선택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 절름발이는 다리에 대해서는 방해가 되는 것이지만, 합리적 선택에는 방해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너에게 일어나는 각각의 사태에 대하여 이것을 너 자신에게 말하라. 왜냐하면 너는 어떤 다른 것에 대해서 방해가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지만, 그러나 너 자신에게는 방해가 되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 노예 생활을 한 철학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과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이성의 철저한 자유를 누렸던 사람이라고 한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의 넓은 집(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義)를 행하며 뜻을 얻으면 민(民)과 함께 도(道)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여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빈천이 그 절개를 옮겨 놓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지조를 굽히지 못하는 사람을 일러 대장부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장부를 현대적으로 옮기면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부귀, 빈천, 위무가 자신의 가는 길을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 예, 의에 비추어 자신만이 자기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대장부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선택하여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자유다. 이것은 자유 의지 이론의 근간이다. 자신이 자유로이 할 수 없는 자연, 타인, 운명을 제어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자기가 이성으로 제어 할 수 있는 선택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노예의 짓이다.

자신이 내리는 선택이라는 뜻에서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일이다. 맹자의 이러한 자유관과 가장 어울리는 철학적 표현으로는 신독(愼獨)이 있다. 대학(大學)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른 바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야 한다(君子必愼其獨也).

유교의 신독(愼獨)과 스토아 학파는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미망(迷妄)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자유는 개인을 떠나서, 그리고 개인의 (수신)修身과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한국대학신문 | 입력 : 03-11-29 오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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