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예를 표방하고, 등록금 면제 기숙사 제공 등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무기로 수능 2등급 이내 학생들을 절반 조금 넘게 유치한 것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 가계소득의 63%를 자녀의 사교육비로 쓴다는 최근의 언론보도를 볼 때, 경제적 유인책은 과거와 같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대 교직원들은 52명의 가족을 맞이한 것을 두고 ‘절반의 성공’이라 평가한다. 절반의 실패가 아닌 성공을 얘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금강대로 가는 길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를 타고 천안 IC를 나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달리다 논산 TG에서 691번 지방도로를 20분쯤 달리니 좌측에 계룡산을 병풍삼아 앉아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신설대학인 탓에 대학 주변은 아직 논과 밭 사이로 드문드문 농가만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도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수업시간이었다. 여느 대학 같으면 수업과 공강이 바퀴 맞물려 돌아가 듯 할 텐데 한 학년의 적은 인원이 함께 움직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듯한 웅장한 본관건물을 향할 즈음 본관과 연결된 ‘ㄱ’자 모양의 왼편 건물에서 피아노 소리가 잔잔히 흘러 나왔다. 그림 같은 자연경관, 조용한 캠퍼스 여기에 피아노 소리라니...
최상재 기획실장이 기자를 맞았다. 그는 금강대 설립이전 포항공대에서 기획 교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관료사고의 대표적 문제였던 대학입시 교장 직인을 없앤 고집 세고 자기일에대한 애착이 강한 직원이었다. 그에게 들으니 금강대는 설립초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 등 내놓으라는 대학에서 유능한 직원을 영입했단다.
그의 안내로 우선 금강대가 자랑하는 국제회의실로 발길을 옮겼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자도 책상도 모든 것이 새 것이었다. 천장에서 화상 회의시 사용하는 카메라가 내려와 벽면에 그림을 비추었다. 그리고 홍보 영상이 돌아갔다. 국제회의 때는 상대 국가 토론자의 얼굴이 비춰진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음향시설 및 통역시설을 갖추었다고. 최 실장에 의하면 현재 이 시설은 통역학부 학생들의 모의 국제회의 실습장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국제회의장을 나와 디지털 방송실로 이동하는 중 복도 한쪽에 ‘교수연구실’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내침 김에 교수현황을 물어보았다. ‘교수경쟁력=대학경쟁력'이 아닌가.
최 실장은 국제적 수준의 교수들을 계속 임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교수들에 대한 평가보다는 교수들이 자신을 계속 개발할 수 있도록 외국 언어 습득 기회 등을 많이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강사 처우도 적극 개선, 현재 국내 최고 강사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강대는 시강 강사료 외에 교통비를 따로 주고, 방학 때는 시간 강사료의 절반을 지급한다고 했다.
연구 중인 교수의 양해를 얻어 연구실에 들어가니 7-8평 남짓한 크기가 아담하다. 대형 유리창 넘어로 계룡산이 보이고, 벽면에는 붙박이 미닫이 책장이 있다. 교수들이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 설치가 마음에 다가온다.
디지털 방송국을 보니 마치 여의도 모 방송국 한 스튜디오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수업 녹화된 테입 편집 중이었다.
방송국 연지흠 주임은 “웬만한 케이블 TV방송센터를 능가하는 시설로 사이버 강의실에서 자동무인카메라로 자동저장 전송되는 강의를 자동으로 녹화할 수 있으며, 강의 후 학생들이 VOD 서비스를 통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는 시설”이라고 했다. 그는 또 "국내외 저명 교수의 강의를 원격지에서 화상강의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한 실시간 진행이 가능하도록 구축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서관이 보고 싶다고 하자 최 실장이 종합 강의동 4층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도서관 사서 최애리 씨는 열람석이 모두 1백64석이라고 했다. 장서 는 총3만여 권에 달하며, 정기간행물 2백여종 및 비도서 자료를 구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도서관내 멀티미디어실과 위성방송 수신실이 마련돼 있어 학문연구활동과 학습활동을 지원하는 종합 학술정보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잠시 쉴 겸 종합 강의동 옥상에 올랐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조감도처럼 건물이 많지 않았다. 흙을 파기 시작한 곳도, 골조공사에 들어간 곳도 있었다. 일반인들이 홈페이지를 보고 이곳에 왔다면 특히, 수험생들이 방문했다면 좋아했을까 아니면 실망했을까.
자연환경이나 첨단시설 들은 생각대로였지만 역시 조감도에는 거품이 있었다고 할까.
최 실장이 정문을 기준으로 왼편에 나란히 기숙사를 가르켰다. 이 대학 학생 전원이 생 24시간 생활하는 곳이다. 붉은색 벽돌의 기숙사는 2인1실로 모두 4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했다. 최 실장은 “기숙사 내 원어민과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어학공부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너무 공부얘기만 들어서인지 머리가 아팠다. 낌새를 느낀 것일까, 최 실장이 웃으며 “기숙사에는 식당을 비롯 독서실, 컴퓨터실, 헬스장, 미용실, 빨래방, 노래방, 휴게실 등 문화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발품을 팔아 금강대 취재를 마치고 기획실로 향하는 길에 휴식을 취하는 한 학생을 만났다. 그는 김 아무개(통역학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지난 1년의 생활이 무척 즐거웠다고 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와 모든 학우들과 중국연수를 간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첫 졸업생으로 비빌 선배도 없지만, 밖으로 나가 밤새도록 취하게 술을 마실 기회도 적지만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또 대학의 구성원이 된 만큼 함께 금강대를 걱정하고 이끌어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로 차를 몰며, 기자는 비로소 금강대 교직원들이 말한 ‘절반의 성공’ 의미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